“ ‘나이를 먹어 태풍에 쓰러진 고춧대를 더 이상 치우지도 못하겠다’는 말이 유언이라니….”
태풍 곤파스가 몰고 온 비바람이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순박하게 살아온 촌로의 목숨을 앗아갔다.
12일 오전 7시30분께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김모(68)씨가 태풍으로 고추 농사를 망치고 축사가 부서진 데 이어 폭우 피해가 겹치자 이를 비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졌다.
13일 오후 꽃지해수욕장 인근 야트막한 언덕 아래에 자리잡은 김씨의 집은 현관문이 굳게 잠긴 가운데 마당에 흙 범벅이 된 장화 몇 켤레와 경운기만 놓여 있었다.
뒤뜰 배수로는 지난 주말 집중호우에 쓸려 내린 토사로 막히고 빗물도 고여 태풍과 폭우의 피해를 한눈에 보여 줬다.
집에서 10여㎙ 떨어진 우사는 비닐지붕을 새로 고친 듯 깨끗했고 10여마리가 한가로이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그러나 우사에서 조금 떨어진 고추밭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었다. 수확해야 할 고추는 바닥에 떨어져 밭 전체를 붉게 물들였고 널브러진 고춧대는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마을 이장 한모씨는 “이달 초 태풍이 왔을 때 김씨의 우사 지붕이 날아가고 고추밭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마을 사람 모두 같은 처지라 각자 복구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엊그제 김씨의 집을 가 보니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창고까지 침수돼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평소 부지런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등 성실한 성격이어서 태풍과 폭우 피해를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김씨의 부인은 경찰에서 “태풍으로 우사와 고추밭의 피해가 컸는데 복구도 안된 상태에서 지난 주말 폭우로 집 뒤 토사가 무너져내려 배수로를 덮쳤다”며 “연이은 피해로 남편의 상심이 컸다”고 진술했다.
태안군 관계자는 “올해 여름 들어 잇따랐던 폭우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2007년 기름유출 사고에 이은 태풍피해로 주민들이 체감하는 피해의 정도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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