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대신 흙으로 빚은 도자판이 미술관 벽을 가득 메웠다. 도자판 위로 폭포가 쏟아지고, 오리가 떠다니고, 꽃이 피어났다. 경남 김해의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오프 더 월(OFF the WALL) : 건축도자, 경계에서’다. 이우환 박서보 김창열씨 등 유명 작가 15명이 이 전시를 통해 흙의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실험했다.
김호득 이강소 안규철 유명균 김춘수 서용선씨는 도자판에 유약 등으로 그림을 그린 후 1,250도의 가마에 구워 작품을 완성했다. 흙 위에 그림을 그린 셈이다. 동양화가 김호득씨는 가로 40㎝, 세로 30㎝의 도자판 18개를 하나로 붙여놓고 일필휘지로 웅장한 폭포를 그렸다. 한지에 먹으로 그렸을 때처럼 미묘한 색깔의 변화 속에 기운이 넘친다.
조각가 안규철씨는 섬세한 드로잉 작업을 시도했다. 슬레이트 지붕, 하늘의 비행기, 빨랫줄에 걸린 수건 등 이 미술관의 작업실 창문을 통해 보았던 소소한 일상의 풍경들을 24개의 흰색 도자판에 하나씩 그려넣었다. 상감 기법처럼 조각칼로 도자판에 가느다란 홈을 파고 그 속에 안료를 채우는 방식으로 제작된 이 작품에는 ‘이름없는 풍경’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화가 이강소씨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리 그림뿐 아니라, 마구 주무른 흙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쌓아 구워낸 입체 작품도 함께 내놓았다. 동양의 절제미와 서양의 추상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코발트블루빛 짧은 선의 반복된 터치로 이뤄진 김춘수씨의 도자판들은 흰 벽 위에 높다랗게 걸려 마치 창 밖으로 바다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이우환씨는 옹기토 도판의 흙 표면을 손으로 밀어 단순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화면을 연출해냈고, 김창열 박서보 김홍주 이영배씨는 대량 생산되는 산업용 타일에 작품을 전사 프린트, 건축에 예술의 옷을 입힌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강소씨는 “흙은 우리가 태어나고 또 죽어서 돌아가는 곳이기에 가장 원초적인 재료”라며 “캔버스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고 작업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춘수씨는 “캔버스에 비해 섬세한 느낌을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굽는 과정을 통해 작업이 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고, 서용선씨는 “도자판에 유약을 칠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계속된다. 관람료는 성인 2,000원, 부산비엔날레 입장권을 갖고 오면 50% 할인해준다. 18일과 25일, 10월 2일과 9일에는 두 곳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도 운영된다. (055)340-7000
김해=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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