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이라니. 소설가 김중혁(39)씨의 (창비 발행)을 보는 독자들은 과연그가 등단 10년 만에 내놓는 첫 장편답다 싶을 것이다. 단편집 (2006) (2008)을 통해 자잘한 사물에도 사람 못잖은 비중을 두는 무경계적 상상력을 선보여온 김씨라면 장르문학적 아우라가 강한 소재인 좀비도 능히 요리할 거라 여기는 독자라면 말이다.
의외다 싶은 반응도 있을 법한데, 김씨의 산뜻한 사유와 문체가 과연 '산 주검(undead)'의 괴기한 이미지와 간단치 않은 상징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이런 기대와 호기심에 김씨는 소설 전체 분량의 4분의 1이 넘도록 좀비가 나오지 않는 특이한 좀비소설로 화답한다. 그가 그리는 좀비는 산 주검이긴 하나 행동거지가 좀비에 대한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인육을 즐기긴커녕 기껏해야 뱀파이어처럼 사람을 물 따름이고, 록 음악이라도 들리면 눈앞의 사람도 안중에 없이 음악에 심취한다. 게다가 나중에 밝혀질 일이지만 이 좀비들, 걸핏하면 군인들의 사냥감으로 동원돼 '목숨'을 내놔야 하는 가련한 존재들이다. 잔혹한 대신 애틋한 김중혁 표 좀비소설이다.
전국을 돌며 안테나 수신 감도를 측정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 채지훈은 전파가 잡히지 않는 미지의 땅 고리오 마을을 우연히 발견한다. 노인이 대다수인 이곳 주민들은 그들만의 비밀을 지닌 채 폐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편 유일한 혈육인 형을 잃은 지훈은 형이 남긴 음반을 듣다가 록그룹 스톤플라워를 좋아하게 되고, 이를 매개로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사서 뚱보130과 고리오 마을에 사는 따뜻한 성품의 번역가 홍혜정을 알게 된다. 가족 같은 이들의 우정 덕에 지훈은 떠돌이 생활을 접고 고리오 마을에 정착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지훈은 갑작스러운 홍혜정의 부고를 듣는다. 여기에 고리오 마을의 수상쩍은 이장 케겔의 방문, 실종됐던 전임자 이경무와의 조우, 어머니를 증오하는 홍혜정의 딸 홍이안의 등장, 무엇보다 전율스러운 좀비의 습격이 이어지면서 그의 삶은 혼란에 빠진다.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좀비들의 습격을 거듭 묘사하며 인간 대 좀비의 구도로 향하는 듯하던 소설은 '좀비 사냥꾼' 장장군의 등장을 계기로 반전한다. 케겔, 홍혜정, 이경무 등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의 연유를 하나씩 밝히며 고리오 마을의 진실에 관한 퍼즐 조각을 맞춰가던 이야기는 생전의 좀비들과 고리오 주민들 사이의 숨은 사연을 드러내며 퍼즐을 완성한다.
산 자와 산 주검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는 설정을 통해 작가 김씨는 '삶은 죽음에 대한 기억과 함께 영위된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소설을 '주민과 좀비들의 연대' 대 '장장군 부대'의 갈등 구도로 재편한다.
김씨는 "쓸 때는 잘 몰랐지만 끝내고 보니 좀비를 소재로 삼아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같은 이질적 존재를 어떻게 배척하는지를 얘기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악역인 장장군조차 그리 사악하지 않다'는 감상에 대해 그는 "선악을 극단적으로 가르는 것은 내 취향에 맞지 않다"며 "이 소설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인물들이 농담을 하는 것, 그게 '김중혁 소설'일 것"이라고 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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