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도쿄(東京)의 최고 기온은 30도 정도로 예상된다. 9월도 중순이 돼서야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일 기세다. 올해 일본은 기상청이 통계를 갖고 있는 1898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을 견뎠다. 6~8월 기온이 평년보다 1.64도 높았다고 한다. 덥기로 유명한 사이타마(埼玉)현 구마가야(熊谷)시는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혹서일이 한 달을 넘었고 도쿄는 밤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가 48일이나 됐다.
더위 못 이긴 저소득 고령자
더위 때문에 숨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살인적인'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사람들이 더위를 이기지 못해 집안에서 숨져 나갔다. NHK방송의 집계에 따르면 장마가 끝난 7월 하순 이후 더위로 체온이 상승하면서 생기는 열사병으로 숨진 사람이 500명을 넘었다. 이 같은 더위를 '재난상황'으로 규정하고 구명대책까지 마련한 지자체도 있다. 오사카(大阪)부 스이타(吹田)시는 집에 에어컨이 없는 고령자 등을 위해 일시 피난장소로 4개 소방서에 '열사병 대피소'를 설치해 냉방시설과 침구 등을 갖추고 시민들을 긴급 수용했다.
더위는 태풍이나 지진처럼 불가항력의 천재(天災)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재난으로 누구나 다 같은 정도로 목숨을 잃을 위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열사병 사망자 4명 중 3명이 70세 이상 고령자였다. 나이가 들수록 더위에 덜 민감해져 신체 변화를 빨리 감지하지 못한 데다 에어컨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전기요금을 아끼려고 가동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화를 당했다.
이 같이 저소득 고령자에 닥치는 비극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달 중순 도쿄에 인접한 사이타마시에서 있었다. 주택가 1층 목조주택에서 40대 후반의 아들과 함께 살던 70대 노인이 열사병으로 숨진 사건이다. 이 집에는 에어컨도 냉장고도 있었지만 가동할 수 없었다.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벌써 10년 전 단전됐기 때문이다. 목수였던 노인은 부인과 일찍 사별했고 정년 퇴직한 뒤로는 연금으로만 생활했다. 동거하고 있는 아들은 한때 운송회사에서 일했지만 허리를 다쳐 집에만 있은 지 오래다. 두 달에 십 수만 엔 나오는 연금은 매달 5만5,000엔의 월세를 내고 나면 식비로도 모자랐다. 생활보호 신청도 했지만 그도 인정받지 못했다.
더위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100세 노인 행방불명 사태의 이면에도 빈곤에 찌든 저소득 고령자 가구의 안타까운 실상이 엿보인다. 지난달 도쿄 오타(大田)구의 2평 남짓 단칸방에서 살았으면 104세일 노인의 유골이 배낭에 든 채 발견됐다. 노인은 9년 전 숨졌지만 같이 살던 아들은 당시 몸이 불편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장례비가 없어 사망신고를 못했다. 유골을 방에 두고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연금으로 근근이 생활을 지탱했다.
소득격차 커지며 양극화 심각
일본 후생노동성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07년 일본의 가구별 소득격차는 사상 최대였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5318로 1984년 이후 계속 증가추세다. 고령화에 따라 수입이 급감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한때 '1억 총 중산층'이라는 정치구호까지 등장했던 일본에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양극화의 골이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똑같이 고령화 사회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에 일본의 현실은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닐 것이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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