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정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정부의 고위 관료가 자신의 딸을 부당하게 특채한 사실이 드러나 공직을 사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공정한 사회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사회로 정의할 수 있다. 당연히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바람직한 시스템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우리네 정서 상으로도 거부감을 준다. 공정한 사회는 정서적으로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시장경제 체제를 가진 우리 사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보다 잘 살게 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과 기업 창의성 존중
인간 사회에서 개인들이 저마다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 사회 발전에 기여할 때 가장 살기 좋은 사회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개인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혁신을 이루면 흔히 다른 사람들도 그 혁신으로 인한 과실을 가져간다. 이 때 제일 먼저 혁신을 이룬 개인은 이러한 과실의 공유에 대해 억울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나아가 이 과실을 모두 똑같이 나누어 혁신을 이룩한 사람의 몫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같아지는 경우, 개인들은 창의력을 발휘할 유인을 갖지 못하게 되고 사회는 생동감을 잃게 된다.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유인을 갖도록 하기 위해 혁신을 이룩한 개인에게 그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보장한다. 그런데 혁신에 대한 대가는 흔히 혁신을 이룬 개인들에게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여러 면에서 우월적인 위치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공직 생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 고위 관료들은 그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생활을 위한 경제적 급부와 명예뿐 아니라 자신이 관리하는 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갖는다. 기관에 대한 장악력은 이들이 공직에서 사회에 기여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이를 사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그도 가능하다.
이렇듯 창의적인 사람이 자신의 수월성을 지렛대 삼아 혁신을 이룩하지 않은 분야를 장악하려 할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은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해 성공했지만, 그의 친지가 꼭 그와 같은 창의적 능력을 가졌을 필요는 없다. 만일 창의적인 능력을 갖지 않은 사람이 창의적인 친지 덕에 특혜를 받는다면 그는 단순히 정서적으로 부당한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창의적인 사람이 기여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해가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아가 이런 사례가 빈번히 일어난다면 창의적 능력을 가졌지만 친지 중에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노력할 유인이 없어지고 사회는 생명력을 잃게 된다.
공정한 사회의 의미는 기업들 간의 경쟁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반경쟁적 행위 중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이 이에 속한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은 자신이 독점력을 가진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을 결합하여 판매하거나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의 수월성을 무기 삼아 소비자들이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위를 뜻한다.
대부분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원래 시장 지배력을 갖기 위해 창의적 노력에 의한 혁신을 이룬 기업이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이 다른 기업에 비해 자신이 수월성을 갖지 않은 제품들을 소비자들이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우선 이런 여타 상품 시장에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창의적 기업들을 배제함으로써 사회적인 왜곡을 발생시킨다.
사회 생명력 유지에 필수
더욱이 이런 관행이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새로운 기업들은 창의적인 노력을 해도 그에 대한 대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해 아예 창의적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공정한 기회의 부여는 단순히 불공정한 관행이 만들어 내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방지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의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강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그를 어기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필수적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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