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별채용 사건으로 소위 ‘가진 자들의 나눠 먹기’ 관행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공기업 등의 특채까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자체 안팎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드러나는 실체
6일 오전 김만수 경기 부천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시 산하기관에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등의 친ㆍ인척이 다수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이들은 공평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시장의 발언은 엄포가 아니었다. 시는 산하기관 감사를 통해 이들의 실체를 확인했다. 시 산하 시설관리공단 전체 임ㆍ직원 150여명 중 20여명이 전 시장 조카, 전 시·도의원 자녀, 공무원 부인, 전 국회의원 친ㆍ인척, 검찰이나 경찰 공무원 부인 등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은 무기계약직(상용직)으로 특채됐다. 상용직은 정년과 퇴직금이 보장되는 자리로 공단은 내부인사규정에 상용직 특채규정까지 만들어 활용했다. 부천문화재단도 직원 160여명 가운데도 40여명이 전 시장 친ㆍ인척, 공무원과 시·도의원 자녀 등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한 특채자는 재단 고위 인사와 채권·채무 관계에 있는 정치인의 자녀로 알려졌다. 특채 논란이 불거지자 감사원은 10일 시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이로써 시는 특채 비리로 감사원 감사를 받는 첫 번째 지자체가 됐다. 특채된 직원 중 일부는 “억울하다”며 직ㆍ간접적으로 하소연했지만 몇 명은 이미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확산되는 논란
지자체와 산하기관 특채 논란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경북 문경시에서는 시장 측근들이 문경관광진흥공사에 특채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경기 성남시에서도 성남문화재단과 시설관리공단, 산업진흥재단에 전·현직 공무원의 친ㆍ인척과 자녀, 시의원 자녀와 며느리 등 40여명이 특채된 것으로 알려지며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밖에 서울 성동구도시관리공단, 경기 하남시 오산시 광주시 등을 비롯해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유력 인사 친ㆍ인척과 자녀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의혹이 터져 나왔다.
지자체뿐 아니라 시교육청도 특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근형 인천시교육감 딸과 시교육청 교육국장을 지낸 이수영 인천시의회 교육의원 딸은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다 사립중등교원 교육공무원 특채에 합격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두 명은 각각 전형 과정에서 다른 지원자들을 제치고 최고점을 받아 의혹을 키웠다. 인천교육비리근절을위한시민모임은 13일 오전 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감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연과 지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그들만의 소 왕국에서 유력 인사의 입김을 통한 특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형식은 시험이지만 합격 가능한 자격 기준과 전형 일정 등을 만들어 내정자에게 유리하게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상용직의 경우 모집 공고나 면접 같은 최소한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의정부지검이 5월 강원 철원군 직원 2명을 불구속기소한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지난해 2월 중순 지방별정직 7급 공무원 제한경쟁 특별임용시험에서 유력 인사 자녀가 지역에 주소를 둔 기간이 1년이 안돼 응시 자격이 없는데도 합격할 수 있도록 도운 혐의를 받았다. 인천관광공사는 2007년 사장이 시의원 자녀의 서류전형 점수를 올려 합격시킨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지자체 특채 관련 비리는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동안 확인된 것은 일부에 그쳤다. 또 드러난다 해도 해당 기관이나 당사자의 문제로 치부,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상용직이나 계약직 등 감시의 눈길이 덜한 자리는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청탁의 대상이 돼 버렸다. 덕분에 공무원시험에 뛰어든 이들의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모(32·여)씨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 아무리 공부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소위 ‘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힘이 쭉 빠진다”고 허탈해 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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