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이백(李白)의 을 배웠다. '천고의 시름을 씻어 버리려(滌蕩千古愁ㆍ척탕천고수)/ 내리 백병의 술을 마신다(留連百壺飮ㆍ유연백호음)/ 좋은 밤, 이야기는 길어지고(良宵宜且談ㆍ양소의차담)/ 흰 달도 잠을 못 이루더라(皓月未能寢ㆍ호월미능침)/ 취해서 빈 산에 누우니(醉來臥空山ㆍ취래와공산)/ 천지가 곧 이부자리와 베개로다(天地即衾枕).'호방한 기세에 저절로 가슴이 부풀었다. 술이나 한데 잠은 낯설었지만 친구들과 집집이 몰려다니며 밤을 지낸 습성이 거칠 것 없는 분방함과 공명했을 성싶다.
■ 요즘 이 시를 떠올리면 오히려 울적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처지나 심사가 특별히 그럴 일은 없다. 곰곰이 따져보니 달라진 것이 있긴 하다. 생각을 밀고 나갈 힘이 달려서인지, 일단 떠올리면 곧바로 '취래와공산, 천지즉금침'까지 단숨에 치닫던 게 지금은 '척탕천고수, 유연백호음' 하다가 만다. 천지를 편한 잠자리로 삼는 기개와 시름에 겨워 술에 젖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그렇게 심어진다. 머리와 꼬리 어느 쪽부터 잡더라도 지팡이를 든 것은 같지만 힘쓰는 느낌은 다르듯, 인식의 초점이 놓이는 위치에 따라 정서적 감응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 의 '천고의 시름'이 참뜻인지는 의심스럽다. 그저 멋스러움을 더하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역사의식을 실어 '천고의 시름'을 읊조렸다면, 세상의 본질적 상처를 어루만지거나 최소한 깊은 탄식이라도 던졌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존재의 실존적 시름이라도, 친구들과 연거푸 술을 마시고 떠든다고 풀리지 않는다. 대중가요 에 나오듯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 하나 가득' 남는 것이 청춘의 고민이고 실존의 번뇌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지식인을 대표하는 그가 세속적 불운을 이리 거창하게 포장했을 리도 없다.
■ 역사적 의미가 실린 '천고의 시름'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빈곤이다. 역사발전으로 절대적 빈곤이 해소되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 상대적 빈곤이 똬리를 틀었다. 상대적 빈곤은 인식 측면에서도 상대적이다. 한 사회의 불평등 인식은 객관적 지수와는 무관하고, 한국사회는 그 괴리가 두드러진다. 2009년 사망원인 통계에서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취업난 등 상대적 빈곤 요인에 대한 인식이 자살의 중요한 동기라니 걱정이 더하다. 불평등 해소 노력과 함께 주관적 인식의 변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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