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하지스 지음ㆍ유세진 옮김
21세기북스 발행ㆍ404쪽ㆍ1만8,000원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요런 생각을 굴리는 사실을 주변에서 안다고 쳐보자. ‘음악에서는 로그를 사용해 음정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여럿 발견됐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평균율 개념이 도입됐다. 제일 많이 쓰이는 건 옥타브를 12개의 반음정으로 나눈 12 평균율이다. 여기서 12는 2의 12제곱근을 뜻하고, 이렇게 되면 각 건반 사이의 간격은 1.059463이 된다. 만약 A음이 초당 440번의 진동수를 보인면 B플랫음은…’
십중팔구 심리치료센터 같은 곳으로 인도될 것이다. 아니면 외계인의 친구 정도로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에 소개될 수도. 학창시절 내내 수학에 치를 떨다가 졸업과 동시에 수학적 사고력을 학교에 반납하는 것은 근대 교육제도의 창시 이후 되풀이된 유서 깊은 관습이기 때문이다. 트위스터 끈이론이라는 이론물리학 분과를 연구하는 수학자 앤드류 하지스는,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불끈한 목소리로 “수학은 재미있다”고 외친다.
저자는 아무리 멀리하려 해도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우주를 친친 감고 있는 수의 세계를 하나씩 펼쳐 보여준다. 영문법의 부정관사 사용에서 소수(素數)의 개념을 찾고, 독일의 현대 작곡가 스톡하우젠의 음악에서 4차원의 휘어진 시공간의 은유를 발견한다. 그가 전하려고 애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재미. 책의 제목처럼 1부터 9까지 아홉 개의 정수에서 숱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는데, 배경 지식의 폭과 깊이 그리고 현란한 필력이 질릴 정도다.
지적 유희는 사용되는 언어가 대중적일수록 해학의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장점보다 약점이 먼저 눈에 띈다. 파인만의 초대칭성 개념을 표현하는 도식, 대수학과 확률의 복잡한 수식 등 ‘겁나는’ 수학의 뼈다귀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 스티븐 호킹이 를 쓰면서 “수식이 하나씩 노출될 때마다 독자가 절반씩 줄어들 것”이라 했다는 우려를 곱씹어 봤으면 어떨까. TV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기엔 눈치 보이는 책. 꽤 어렵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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