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공정성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더러는 공정성에 대한 최근의 폭발적 관심이 우리 사회의 부정의(不正義)함을 보여주는 수치스러운 현상이라고 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공정성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우리 사회가 물질적 근대화 단계에서 성숙한 선진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표로 삼고 싶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거듭 천명한 공정한 사회에 대한 의지 표명의 진정성을 그대로 믿고 싶다. 동시에 공정한 사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우리 사회의 질적 성숙을 앞당길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성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형식적 공정성 넘어서야
공정성은 사회 협력의 혜택과 부담을 나누는 절차와 그 결과가 충족시켜야 할 형식적ㆍ 질적 조건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사회 구성원 누구나 원하는 사회의 주요 가치 또는 재화, 이를 테면 공직과 기회, 부와 소득, 학벌과 직업 등을 배분하는 방식이나 절차가 갖춰야 할 속성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방이나 납세와 같은 의무의 배분과 이행, 그리고 범죄나 부정행위의 처벌과 관련된 절차적ㆍ 결과적 요건이다.
이런 사회적 혜택과 부담의 배분이 공정성에 위배되었을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부당한 경쟁의 결과로 인식하게 되어 사회를 향해 불만과 적개심을 쌓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 생활의 혜택과 부담이 공인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배분된다는 믿음은 사회 협력의 강화와 사회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우리 사회가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지켜본 공직 특채 비리,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부당한 이익 분배, 대기업 총수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편파적인 법 집행, 사회 지도층의 위장전입과 병역비리 등등 수많은 불공정 사례들이 시민들의 정의감과 사회 통합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상식적 수준에서 공정성은 주어진 게임의 룰이나 원칙을 불편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공정성은 법과 원칙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것을 적용하는 방식이나 태도에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순전히 형식적이다. 하지만 형식적 공정성만이라도 제대로 지켜진다면,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비리와 부패들이 척결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회가 일단 형식적 공정성이나마 구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겉으로만 공정한 사회에 그치기를 원치 않는다. 매우 공정하게 보이지만 비정한 사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K1 격투기는 공정하게 적용되는 규칙을 따르되, 강한 자가 부와 명예를 독식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예시한다. 우리 사회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 사회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공정한 사회에 대한 관심을 좋은 사회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갈 필요가 있다. 정의 혹은 공정이란 덕목이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좋은 사회의 비전을 전제하지 않을 경우, 최근 우리 사회에 정의론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샌들 교수가 적절히 지적했듯 결함이 심각한 사회를 치유하는 구제(救濟)적 덕목(redemptive virtue)에 불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떳떳한 삶이 명예로운 사회
내가 바라는 공정한 사회는 공직자들과 시민들이 다소 불편하거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공정하게 사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특혜를 누리는 삶보다 훨씬 더 명예롭다고 믿는 사회다. 불법과 탈법으로 이득을 누리고 반칙을 통해 권좌에 오르는 것을 커다란 수치요 불명예로 여기는 문화가 잘 정착된 사회다. 사회의 혜택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독점하려 하면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희생과 부담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회피하려는 특권층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10년 안에 공정한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이상주의자의 헛된 몽상에 불과한 것일까?
김비환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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