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0일 러시아에서 공개한 대북 메시지는 미래지향적이다.
3월26일 천안함 사태 발발 이후 밝혀온 그간의 언급들과 결이 다르다. 그간 이 대통령은 천안함 사태 사과, 비핵화 조치 이행 등 북한이 해야 할 조치만을 열거했다. 하지만 이날 ‘제2의 개성공단’검토 등 남북관계 개선의 청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하면서 북한이 취할 조치를 조건으로 붙였다.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가 급진전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남측을 더 안심시킬 수 있도록 한다면 제2의 개성공단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2 개성공단에서 주목되는 측면은 북한에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북한에게 득이 되는 사업들을 추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또한 ‘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되면 후계자로 알려진 김정은도 만날 수 있다고 언급, 김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도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음을 시사했다. 후계자로 추대될 김정은과 권력세습에 대해서도 신중했다. 이 대통령은“(세습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언급할 수 없고”, “차세대 지도자로 지명됐다고 해서 (나의) 카운터파트(상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김정은이) 어떤 사림인지는 잘 모른다”고 밝히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중을 내비쳤다.
남북관계 정상화 방향에 대해서는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평화공동체-경제공동체-민족공동체 구상’이라는 점진적 개선안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고 남북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평화(공동체)가 유지되면 경제협력이 활발해질 것(경제공동체)”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대목들은 이 대통령이 그리는 남북관계 청사진의 폭과 넓이가 어느 정도일 것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짚을 일이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북핵 문제에서의 진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 입장과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제2 개성공단은) 북한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를 쉽사리 일방적으로 진전시킬 수 없는 어려움을 재차 거론한 것이다.
결국 이 대통령의 시선은 남북관계 개선의 미래를 향하고 있지만 현실의 걸림돌은 견고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 쌀 지원은 이 대통령의 의중을 드러내는 첫 계기가 될 것이다. 이후 남북관계는 공을 받아 든 북한의 행보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야로슬라블(러시아)=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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