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밀러 지음ㆍ이한음 옮김
김영사 발행ㆍ316쪽ㆍ1만5,000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중구난방의 무질서를 경계하는 이 속담은, 믿을 만한 전문가나 리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조직이 잘 굴러가고 일이 된다고 본다.
은 정반대로 말한다. “전문가에게 묻지 말고 대중에게 물어라.”똑똑한 몇 명의 전문가보다 다양한 개인이 모인 무리가 더 똑똑하다는 거다. 제목‘’은 ‘영리한 무리’라는 뜻으로, 리더나 지휘자 없이도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무리를 가리킨다. 개미와 꿀벌 같은 사회성 곤충 집단과 물고기, 새, 순록 떼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영리한 무리들의 행동 패턴을 인간 조직에 적용하면, 세상이 좀더 잘 굴러갈 것이라고 일러주는 책이다. 자연의 체계나 다른 생물들에게서 한수 배우는 이런 연구를 ‘생체모방학(Biomimetics)’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선임편집자로 일해온 과학 저널리스트다.
개미 집단에는 리더가 없다. 여왕개미는 알을 낳을 뿐 지휘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매일 주변을 정찰하고 먹이를 찾아 운반하고 집을 관리하는 일을 역할을 나눠 효율적으로 해낸다. 먹이를 구하러 가는 탐색만 해도, 가장 빠른 길을 잘도 찾아낸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아프리카 사막의 흰개미는 완벽한 냉난방 기술을 갖춘 건축의 고수다. 높이가 3m가 넘는 굴뚝 모양 집을 짓는데, 공기 흐름을 조절해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설계도도 지휘자도 없지만, 역할이 서로 다른 개미들이 상호작용을 해서 걸작을 완성한다. 꿀벌들이 새 집을 구하는 과정은 어수선해 보이지만 결과는 늘 최상이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러 나갔던 벌들은 한 마리씩 돌아와서 제각각 서로 다른 장소를 추천하는 꼬리춤을 추는데, 대여섯 시간 그러고 나면 최적의 장소를 찾아내 이주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과학적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저자가 추출해낸 원리는 크게 네 가지, 자기 조직화, 지식의 다양성, 간접 협동, 적응 모방이다. 책은 이 원리들이 영리한 무리들에게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서 인간 조직에 응용한 사례를 많이 소개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전역의 1만 5,000 군데 이상에 산소, 액화 질소 등 가스를 공급하는 아메리칸에어리퀴드 사는 개미 집단의 자기 조직화 원리를 가스 생산과 운송 방식에 적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 흰개미의 집짓기 기술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인간의 고민을 풀어줄 대안 중 하나다. 미국 국방부는 지휘자 없이 움직이는 수천 마리 물고기 떼가 한꺼번에 방향을 바꿔 이동하는 비밀을 로봇 병기 팀 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영리한 무리들의 ‘집단지능’은 위키피디아,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가 지식과 여론을 형성하고 스스로 걸러내며 진화하는 비결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기업의 CEO, 조직의 리더 등 책임자가 있어야만 조직이 잘 굴러간다고 믿는, 위계질서에 익숙한 상식과 관행을 뒤집는 신선한 통찰이 가득한 책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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