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보면 신한금융 지주의 최대 주주(17%)인 재일동포 주주들은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신한금융 사태를 일으킨 세 당사자인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 이백순 행장 모두를 질타했고 특히 고소를 당한 신 사장을 동정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우나 고우나 라응찬 뿐'이라는 어쩔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9일 나고야에서 열린 간친회(주주 설명회)에서 재일동포 주주들이 "(신상훈 사장의 거취 문제 등) 모든 것을 이사회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고 결론지은 것은 사실상 이번 사태수습을 전적으로 라 회장에게 맡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한 지주 관계자도 "속단할 수 없지만 이사회에 맡긴다는 것은 결국 라 회장 체제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일단 신한 측은 이사회 일정에 대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안건에 대해서도 "이사들의 고유권한이다"는 입장. 하지만 위성호 신한지주 부사장은 "주주들이 '신 사장의 해임안을 상정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욱이 라 회장이 재일동포 주주들에게 "(저를) 믿고 맡겨주고, 격려해주시면 반드시 (이번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겠다"고 말한 만큼 신 사장 해임을 위한 작업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신한측은 내주 중 이사회를 열어 신 사장 해임안을 상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사회 구성을 볼 때 신 사장 해임안이 상정만 된다면 통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신한금융의 이사진은 상근이사인 사내이사 2명(라 회장, 신 사장)과 비상근이사 2명(이백순 행장, 류시열 법무법인 세종 고문), 사외이사 8명 등 모두 12명. 사외이사 8명 중 ▦4명이 재일동포 주주이고 ▦3명의 국내 사외이사는 라 회장측이 추천한 인사, 그리고 ▦1명은 필립 아기니에 BNP파리바 아시아 본부장이다. 만약 신 사장 해임안이 상정돼 표 대결(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로 간다면 라 회장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도다. 일각에서는 이사회가 중재안으로 직무정지 또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이전까지 해임을 유보하자는 쪽으로 뜻을 모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이는 사태 조기수습과는 거리가 먼 `미봉책'에 불과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두 가지 문제가 남는다. 하나는 신 사장측의 대응. 신 사장이 해임에 반발해 무효소송 등 절차를 밟는다면, 사태는 장기화될 수 있다.
또 하나는 신 사장이 배제된다 해도 이번 사태를 주도한 '라 회장-이 행장' 라인 또한 깊은 상처를 입은 만큼, 정상적인 리더십 행사가 가능할 지 불분명하다. 특히 라 회장은 금융실명제 위반문제로 당국 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여서, 그 결과에 따라 신한 지배구조 자체에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재일동포 주주들이 일단 라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는 했지만, 주주간 입장차가 여전한 것도 변수다. 한 재일동포 주주는 "재일동포 사외이사 4명이 이사회 개최에 동의한 것이지 (신 사장 해임 안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며 "이들이 어떤 안을 올려 어떤 결론을 낼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포 주주 일각에서는 이사회에서 신 사장 해임 뿐 아니라 라 회장과 이 행장의 신임문제도 함께 상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 신 사장도 "세 명이 모두 일단 물러난 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라 회장과 이 행장 거취문제 또한 막판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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