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다운증후군인 딸과 난생 처음 국립극장을 찾은 김은영(가명)씨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립무용단의 공연 ‘Soul(솔), 해바라기’가 5분 늦게 시작하더니, 25분 만에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예술노조는 지난 3월부터 공연 지연 등의 쟁의행위를 이어오고 있는데, 극장이 이를 무시하고 공연을 강행하다 진행에 차질을 빚자 아예 공연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사태의 내막은 이렇다. 극장과 예술노조는 지난 2월 임금 및 단체협약 해지 이후 지난달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164일 동안 54차례나 협상을 했다. 하지만 성과 연봉제 도입과 오디션제의 방법, 휴가 축소 등을 놓고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성과 연봉제의 경우 극장은 기본급 70%에 성과급 30%, 노조는 기본급 90%에 성과급 10%를 주장하고 있어, ‘밥그릇 싸움’이라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다행히 이튿날인 8일 공연은 30분 지체한 뒤 열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틀 동안 공연을 못 보거나 불편을 감수한 관객이 900여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국립극장 노사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관객들은 공연 도중에 언제 쫓겨나갈지 모른다.
임연철 국립극장장은 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극장은 문화부가 수립한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기존 입장을 고수한다”며 “파업이 지속될 경우 재단법인화나 유사 예술단체 통폐합 등을 문화부에 건의할 수 있다”고 엄포만 놓았다. 노조는 “법인화 수순으로 풀이되는 연봉제까지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대 1,000만원 차이가 나는 성과급 비율은 동료 간의 화합을 해치므로 수용할 수 없다”며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노사는 공히 “관객께는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하지만 묻고 싶다. 문화소외계층으로 초청받아 그 날 공연장에 간 김씨 모녀는 물론 국립극장을 사랑하는 일반 관객들의 실망감, 시간 낭비는 어디에 호소해야 하나. 그들은 대한민국 국립극장의 볼모가 아니다.
김혜경 문화부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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