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신(神)에 관한 담론이 연일 외신을 타며 증폭되고 있다. 미국 물리학자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쓴 새 책 출간에 맞춰 국내에 전해지는 호킹 박사의 얘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주를 낳은 태초의 빅뱅(Big Bang)이 어떻게 일어났느냐는 의문에 대해 '중력의 법칙과 같은 물리학 법칙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었다'는 신간 속의 해답이다. 다른 하나는 7일 미국 abc 뉴스에 직접 나와 밝힌 것으로, "인간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지만, 과학은 신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두 가지 다 직설적으로 '신이 없다'고 단언한 건 아니다. 하지만 우주가 '스스로 창조'됐다는 표현이나, 신을 필요에 의한 존재로 언급한 대목은 무신론적 뉘앙스를 짙게 풍기면서 새삼 우주 창조의 비밀을 향한 호킹 박사와 현대 물리학의 여정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우주의 팽창이 관측으로 확인된 이래, 우주 기원에 관한 연구는 팽창이 시작된 최초의 시공간, 즉 빅뱅의 순간을 물리학적으로 규명하는데 모아졌다. 빅뱅 순간이란 각각 평균 1,000억 개의 태양계를 거느리고 있는 은하 1,000억 개가 약 150억 광년의 시공간에 펼쳐진 '오늘'의 우주가 단 한 점에 모아져 있었던 때를 말한다. 연구는 이때 궁극적 소립자들의 물리적 상황을 추론하기 위해 초대형 입자가속기를 써서 납 원자핵들을 아주 높은 에너지로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충돌 순간 납 원자핵들은 빅뱅 직후와 비슷하게 밀도와 온도가 극히 높은 상태에 처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납 원자핵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분열되고, 그 중성자와 양성자는 더욱 작은 소립자인 쿼크로 재차 분열된다. 하지만 실험실 수준의 입자가속기와 에너지로는 쿼크가 실제 빅뱅 직후처럼 중성자 등에서 완전히 분열돼 자유롭게 된 상황을 재현할 수 없다. 이론적으로 자유쿼크가 발생하려면 1조도 정도의 온도가 돼야 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입자가속기를 통한 초소형 빅뱅 모의실험은 컴퓨터를 통한 시뮬레이션 연구로 이어졌다. 호킹 박사는 케임브리지대에 설치된 슈퍼컴퓨터 코스모스와 핵물리학 및 천체물리학계에서 모아진 관련 데이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 연구를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런 연구에서도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는 궁극의 순간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론물리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궁극적인 한 점의 크기가 제한돼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일의 '백과사전 작가'로 불리는 게르하르트 슈타군은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이민용 옮김ㆍ옥당 발행)에서 광속 같은 '우주상수'를 이용해 현재 이론적으로 확인 가능한 최소 공간의 크기를 직경
(특정길이), 최소 시간을 빛이 를 관통하는데 걸리는 초라고 각각 설명했다. 이때 물질과 에너지의 상태는 이다. 이 시공간 너머 더욱 작은 세계의 얘기는 여전히 미지로 남아 있다는 얘기다.
호킹 박사의 신에 관한 담론은 논리적으로 현재의 이론물리학이 도달한 최소 시공간과 빅뱅 순간의 궁극적인 한 점 사이에서 나온 얘기인 것 같다. 하지만 빅뱅 순간의 궁극적 한 점에 접근하는 건 0보다 큰 가장 작은수에 다가가는 것처럼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호킹 박사는 '신의 지평선'을 넘은 걸까.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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