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작지만 강한 기업 VK를 이끌었던 이철상(43) 전 사장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기업인이 아닌 민간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겸 소장이다. 그는 요즘 애플을 이길 수 있는 신개념 스마트폰인 키트폰 개발을 준비 중이다.
8일 만난 이 씨는 "회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연구소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첫마디로 운을 뗐다. 그만큼 그에게는 VK 부도가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87학번인 이 씨는 1991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의장 권한대행을 맡아 학생운동을 주도한 인물. 97년 바이어블코리아라는 휴대폰 배터리 생산업체를 설립하면서 기업인으로 변신한 그는 2001년 휴대폰 사업에 뛰어들어 이듬해 중국 휴대폰업체 차브리지를 인수하면서 사명을 VK로 바꿨다.
VK는 중국에 자체 상표로 저가 휴대폰을 내놓으며 2004년 3억달러 수출탑을 받을 만큼 승승장구했고, 이 씨는 386 벤처신화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노키아, 모토로라 등 거대 기업들이 저가폰 시장에 뛰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은 VK는 2006년 7월 부도 처리됐다. 이 씨는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지난해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고, 올해 6월 항소가 기각됐다. 이 씨는 "VK를 살리기 위해 단행했던 증자 관련 문제는 재판과정에서 무혐의로 밝혀졌다"며 "현재 대법원 상고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씨는 재판 준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나, 그의 사업 경험을 높이 산 경제연구원에서 그를 지난 6월 영입했다. 그는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 전인 VK시절,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 사내에 모바일 컴퓨팅 사업부를 신설하고 프랑스 웨이브컴의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수해 스마트폰 및 관련 반도체 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다.
이 씨가 준비 중인 키트폰은 스마트폰에 태블릿PC 같은 7~9인치 모니터를 끼워 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다. 그는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은 것이 흠"이라며 "얇고 가벼운 7~9인치 패드를 끼워주면 스마트폰에 연결해 큰 화면으로 작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공공 장소에 스마트폰을 연결할 수 있는 5, 6만원대 모니터를 비치하면 누구나 편하게 대형화면으로 작업할 수도 있다.
이 씨가 키트폰을 주장하는 이유는 앞으로 스마트폰이 태블릿PC, 노트북, 데스크톱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2년 뒤면 지금보다 4배 이상 빠른 스마트폰용 반도체(쿼드코어)가 나와 충분히 PC를 대신할 수 있다"며 "키트폰을 보급하면 한국이 충분히 애플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한국만큼 고정형 무선인터넷(와이파이)이 발달한 곳이 없다"며 "인터넷 접속 모니터를 공공장소에 비치하고 스마트폰을 연결해 작업을 하며 충전도 하면 애플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키트폰은 단순 구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씨는 요즘 국내외 많은 기업들을 만나고 다녔다. 국내 대형 통신서비스업체 및 중견교육기업 등이 이 구상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최근 만난 일본 유명 통신업체 최고경영자(CEO)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이 씨는 키트폰을 국내 중소업체들을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그는 "폰 제조 및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을 중소기업 위주로 진행할 생각"이라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어려움을 겪은 중소업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씨는 대기업 위주의 스마트폰 개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는 "1만명의 개발자를 투입한다고 1만명 분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조건 개발자를 끌어들이는 인해전술이 아니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소프트웨어를 제 값 주고 사들이는 생태계가 우선 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조합해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것이 대기업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 씨는 "당분간 연구원 일에 매진해 다른 기업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그러다 보면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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