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명석의 That's hot] 예쁘고 착한 女주인공 당당한 여성은 어디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명석의 That's hot] 예쁘고 착한 女주인공 당당한 여성은 어디로

입력
2010.09.08 12:04
0 0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구미호(신민아)는 특별한 존재다. 수백년 묵은 구미호여서만은 아니다. 구미호는 500여년을 족자에 갇혀 살아 세상 일에 어린 아이처럼 무지하다. 사이다를 마시며 처음 맛보는 거라며 즐거워하고, 남녀의 연애는 무조건 ‘짝짓기’로 본다. 최대웅(이승기)이 구미호의 여우구슬 덕에 목숨을 건졌는데도 그녀를 떼어놓으려 한 건 무서워서만은 아니다. 계속 비싼 한우를 찾고, 여자친구가 되겠다며 다른 이들과의 인간관계에까지 끼어드는 구미호는 골칫덩이다.

그나마 최대웅이 구미호를 견디는 건 주변의 도움 때문이다. 돈 많은 할아버지 덕에 한우 값을 감당하고, 그의 친구들은 구미호와 함께 살 집을 마련해준다. 경제적 원조가 뒷받침된 동거 안에서 싹트는 최대웅과 구미호의 사랑은 알고 보면 어른들의 소꿉놀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극단적인 연애 판타지다. 세상도, 연애도 모르던 여자가 멋진 남자와 함께 살며 경제적 부담과 육체적 관계에 대한 긴장 없이 마음껏 연애를 즐긴다. 적극적이고 당당한 최대웅의 선배 은혜인(박수진)이 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훼방꾼으로 나오는 건 흥미롭다. 드라마에서 흔히 반복됐듯이,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는 여성이 진심 하나만으로 외모와 능력을 지닌 악녀를 제치고 사랑을 얻는 셈이다. 물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는 최근 최대웅이 구미호를 보다 깊게 이해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작가 홍정은 홍미란 자매가 과거 KBS ‘쾌걸 춘향’, SBS ‘마이걸’ 등에서 당차고 생활력 강한 여자들을 그렸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다. 홍 자매의 작품 속 여주인공은 그 후 KBS ‘쾌도 홍길동’, SBS ‘미남이시네요’ 등으로 올수록 세상에 무지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 사이 TV에선 재벌 2세 판타지의 극단인 KBS ‘꽃보다 남자’가 히트했고, 최근에는 공부 못하고 순수한 여고생이 주인공인 MBC ‘장난스런 키스’가 시작했다. 반면 한때 TV 드라마의 변화 흐름을 주도하는 듯 했던, 현실의 평범한 여성을 다루는 멜로 드라마는 점점 보기 어려워진다.

착하기만 해도 모든 것을 얻는 세상에 대한 판타지.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어린 시절로 퇴행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가지 더. 구미호는 얼굴만큼은 예쁜 것으로 설정된다. 아무 것도 모르는 구미호가 남자에게 사랑 받으려면 예뻐야 한다는 것. 판타지 세계에서도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가보다.

대중문화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