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 또는 '공정사회'를 놓고 말들이 많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처음 얘기했을 때는 대체로 무심하게 들었지 않나 싶다. 그러다 인사청문 파동과 외교장관의 딸 특채 스캔들에서 대통령이 다시 언급하자 갑자기 뜻풀이 논란이 벌어졌다. 국어사전이'공평하고 올바름'으로 풀이한 공정(公正)은 늘 쓰는 말인데도, 그런 사회라니 선뜻 뚜렷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심판 판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는 논란이나, 공정거래법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상기하면 대충 짐작할 만하지만, 그래도 아직 어렴풋하다.
■ 그래선지'뭔 개똥 철학이냐'는 막말, 험담이 나오자 청와대가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공정사회는 경제위기 극복에서 소외된 청년실업자와 중소기업 등에 경기회복의 온기를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위기 극복의 혜택을 나누자는 의미라고 한다. 그제는 대통령이 직접 "누구에게든지 균등한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게 공정사회의 기본 바탕"이라고 설명했다. "있는 사람이 더 내고 적은 사람은 적게 내는, 그런 복지를 통해 모든 분야에서 기회를 균등하게 준 후 결과는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 웬만큼 설명이 된 듯하다. 그러나 어느 논객이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를 언급한 데서 보듯,'공정'을 국정 표어나 구호처럼 강조하는 것은 자칫 정책을 넘어 체제이념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 그의 이 대입 논술에 자주 나오는 것은 그만큼 논쟁할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롤스의'공정(공정성)'개념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와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등 또는 격차를 인정하는 자유주의를 탁월하게 절충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 분야는 물론, 법원 판결과 정치적 수사에도 많이 쓰인다. 그러나 미국의 현실은 딴판이라는 비판이 많다.
■ 학문적 논쟁을 요령 있게 간추릴 자신은 없다. 그보다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영국 사회에서 "미국적 공정 또는 정의를 답습한 결과"라는 좌파의 비판과 논쟁이 이어진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비판과 반성의 핵심은 "있는 사람들의 탐욕을 억누르고 진정한 공정성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지는 우리 사회의 있는 사람들이 벌써'공정한 사회'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런 모습이 예고하는 싸움에 대통령이 앞장 설 자신이 있는지 궁금하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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