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감동이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졌습니다.”“마구마구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감동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언뜻 보면 휴먼 다큐멘터리 시청소감 같다. 하지만 아니다. 지난 주말인 4, 5일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자 게시판에 오른 글들이다. 시청자들은 저마다 방송을 보고 느낀 감동을 나누기 위해, 감동을 준 제작진과 출연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글을 남겼다. ‘배꼽 빠지게 웃었다’거나 ‘안 웃겼다’거나 주로 재미를 논하던 예능 프로그램 시청 후기가, 2010년 여름, 감동의 물결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스포츠ㆍ음악의 감동이 예능 속으로
4일 방송한 MBC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와 스포츠의 감동이 만들어 낸 한 편의 드라마였다. 프로레슬링 특집의 결정판인 WM7 경기가 전파를 탄 이날은 멤버들이 프로레슬러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줬던 예전 방송이 웃음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그들의 노력에서 발효된 감동을 전하는 데 앵글을 맞췄다.
짠했다. 사각링의 화려함은 고통과 가슴졸임으로 가득한 대기실과 극한 대조를 이루며 감동이 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딱 거기까지만 했다.
프로그램은 허리 통증과 체력 고갈로 경기 직전까지 링거를 맞다가 경기장으로 향한 정준하의 고통에 찬 얼굴을 보여주며 시작했다. 이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심한 통증이 뒤따르는 기술을 거푸 시도하는 하하의 모습과 가벼운 뇌진탕 증세로 어지럼증과 울렁거림을 호소하던 정형돈이 끝내 구토하는 장면까지도 오롯이 카메라에 담겼다.
가수 싸이가 경기 중간에 펼친 축하공연무대에서 ‘연예인’을 부를 때 감정은 극에 달했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언제나 웃게 해 줄게요”라는 가사에 오버랩 된 일곱 멤버들의 땀과 고통은 형언하기 힘든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KBS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은 잇달아 방송한 아마추어 밴드 편과 합창단 편에서 오선지가 품은 감동을 프로그램 안에 녹여냈다.
엉성하기만 했던 멤버들이 화음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고통은 어김없이 수반됐다. 밴드 편에서는 보컬을 맡은 김성민이 성대 결절을 앓으면서도 목에 핏대를 세웠고, 드러머 이윤석은 드럼 스틱 때문에 생긴 손가락의 상처 때문에 테이프로 스틱을 손에 고정하는 고육지책을 쓰기도 했다. 노래와는 거리가 멀었던 멤버들이 최선을 다해 합창단에 도전하는 모습도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는 예능도 스토리다
한때 공익 예능이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예능에 공익적 요소를 접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공방도 있었다. 당시 ‘양심 냉장고’라는 대명사를 낳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는 정지선 지키기, 노약자 돕기 등의 주제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들자는 게 코너의 취지였다. MBC ‘느낌표’역시 문화재 환수 운동을 전개하면서 시청자들에게 공감대를 얻었다. 사회적 의제를 설정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함께 감동을 선사했던 것.
하지만 오늘날 예능이 감동을 전달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사회라는 거푸집을 거치지 않고, 연예인들의 격한 도전기가 낳는 생생한 감동이 곧장 피부로 전달되는 방식을 택한다.
KBS ‘1박2일’의 나영석 PD는 “사람들은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이 감동에 천착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감동이라는 표현보다 스토리라는 표현이 맞다”며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힘든 목표를 설정해 그것을 달성한다는 스토리를 보면서 볼 만한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그것 자체로 박수를 준다”고 분석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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