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영화를 사랑하는 백만 가지 방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영화를 사랑하는 백만 가지 방법

입력
2010.09.08 12:07
0 0

영화 평론가도 가끔은 영화를 보면서 운다. 가끔 만나는'인생의 영화'들은 삶의 단층 속에 깊이 숨어 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뿌리를 내린다. 조그만 씨앗 같던 그 것들이 이윽고 잎을 내고 새 순을 틔우며 마음속에서 자라는 순간. 영화광의 삶은 시작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다. 는 앉은 자리에서 내리 세 번을 보았다. 뭔가 좀 알 때까지 계속 본다. 대사를 외우고, 배우 얼굴이 눈을 감아도 둥근 달처럼 떠오르는 지경이 되면, 굳이 물리적 영화를 스크린에서 틀 필요가 없어진다. 그때는 마음의 극장에서 의 두 카우보이가 말을 달리고, 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찌푸린 얼굴이 영사된다.

내면의 영화가 쌓일수록, 저절로 할 말이, 아니 쓸 말이 생겨 손이 들썩인다. 돈을 안 받아도 영화 글을 쓰고 싶고, 동네 신문에라도 쓰고 싶어진다. 최근 라는 책을 보니 저절로 무릎이 쳐졌다. 영화평론가인 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과 영화 글을 쓴 것이다. 나는 왜 나 혼자 영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지? 영화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 영화를 보면서 혼자서 혹은 누구라도 함께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블로그에 카페에 일간지에 주간지에 글을 쓰고 영화를 보게 되면,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영화가 어느 순간 느리게 흘러간다. 마치 눈이 미세한 카메라가 된 듯, 컷들이 툭툭 불거져 보이면서, 이 컷들을 붙인 이음새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 저 컷 다음에 왜 저 컷을 붙였을까''저 장면은 어디서 찍었을까''카메라는 어디에 있는 거지' 등등, 안 하던 질문을 하게 된다.

이젠 머릿속에서 영화가 만들어진다. 둥둥 날던 컷들이 서서히 붙고, 이어지고, 또 본래 순서나 각도를 바꿔 보기도 한다. 영화는 만들어진 과정의 비의(秘義)를 살포시 드러낸다. 그러면 '스크린 밖'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평도 안 되는 엘리베이터에서 30분 이상 버텨낸 감독이 존경스럽고, 카메라맨이 위대해 보이고, 배우가 안쓰러워진다.

마침내 영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 내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찍고, 어떤 사람은 홍보하고, 어떤 사람은 제작하고, 어떤 사람은 포스터를 찍는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영화 보고 상담하고, 영화 보고 기업 연수하고. 국내 최초로 영화 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에'뭔가 씐' 사람들에게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의사든 변호사든 대통령이든, 결국 그는 영화의 바닷가로 모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방 끈의 길이나 영화를 전공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극장은 그 자체로 커다란 학교이므로.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극장에 간다. 영화를 사랑하는 백만 가지 방법 중 하나. 올 추석에는 가족들 손을 잡고 극장에 가야겠다. 딸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하고, 아들과 함께 영화 글을 써 보고 싶다. 영화를 사랑하는 백만 가지 방법의 화룡점정. 나만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글 쓰기를 가족과 세상과 함께 나눌 것이다. 그러면 이미 배움은, 치유는, 시작된 것은 아닐까. 극장은 커다란 신전이고, 학교이고, 병원이며, 놀이터. 영화는 마음의 부패를 막는 백신이며, 영혼에 놓는 주사이므로.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