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수입한 돼지고기는 21만톤. 이 중 17%(3만6,000톤)가 지구 정 반대편 칠레로부터 수입된다. ‘칠레산’으로 뭉뚱그려 수입되긴 하지만, 이들의 90%는 아그로수퍼라는 칠레 기업이 직접 생산한다. 국내에서 수입하는 돼지고기의 15% 이상이 칠레의 한 단일 대기업에서 사들여지는 것이다. 이 회사는 돼지고기, 와인에 이어 지난달부터는 한국시장에 닭고기 수출도 시작했다.
50여년 전 영세 양계장에서 출발한 아그로수퍼의 작년 매출은 1조8,000억원. ‘제조업 황무지’인 칠레에서는 손에 꼽히는 대표기업 중 하나다. 여전히 영세농 위주인 우리나라 현실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사료, 사육, 도축, 가공, 판매까지 하나로
지난달 30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롱고빌로 지역에 대형 사료공장이 들어서 있다. 아그로수퍼가 사육하는 돼지, 닭, 칠면조 등에게 먹일 사료를 직접 만드는 곳이다. “사료를 사다 쓰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떤 사료를 먹이느냐가 고기의 품질과 안전성을 좌우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사료 생산부터 사육, 도축, 가공, 판매 등 축산의 모든 단계에서 이 회사가 내세우는 가장 큰 강점은 공정별로 자회사를 두고 100% 직접 관리하는 수직 계열화다. 안드레아 타카미야 아태지역 총괄사장은 “만약 여러 개 다른 농장에서 돼지를 공급받을 경우 돼지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생산이력시스템이 칠레에서는 오래 전부터 정착 가능했던 것도 이 때문. 각 공정 별로 철저한 이력관리가 통제되다 보니,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즉각 원인 파악이 가능하다.
가축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지금껏 칠레에서 구제역이나 광우병, 조류 인플루엔자(AI) 등이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등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이점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존 루어 수출총괄이사는 “아그로수퍼의 위생ㆍ방역관리는 세계 그 어느 기업을 능가한다”고 강조한다.
산티아고 남서쪽 로사리오에 있는 돼지 도축ㆍ가공 공장은 입구부터 위생 통제가 엄격하다. 가운과 마스크, 모자, 장갑, 장화 등 위생 복장 착용은 기본. 무려 6단계에 걸친 소독작업을 거쳐야만 입장이 허용된다. 도축공장에는 칠레 정부의 수의과학검역원(SAG) 소속 수의사를 비롯해 수십 명의 수의사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돼지나 닭 사육농장의 위생관리는 더욱 철저하다. 사육장 외부에는 높은 철조망이 설치돼 있어 외부인들은 아예 사육농장 안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사료 공급 역시 철조망 밖에 설치된 파이프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사료에 칼슘 공급원으로 육골분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각종 질병을 차단하기 위한 것. 대신 바다의 조개 껍질에서 추출한 자연산 칼슘만을 사용한다. 작년 칠레산 일부 돈육에서 다이옥신이 발견됐지만, 아그로수퍼가 비켜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철저한 관리 덕이었다.
지속성장의 비결은 친환경
이 회사는 친환경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사실 소, 돼지 등을 키우는 과정에서 전세계 축산업 부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발생량의 18% 수준. 전 세계 교통수단이 만들어내는 온실가스 비중(13.5%)보다도 훨씬 더 높다.
그러나 아그로수퍼는 10년전인 2000년부터 1억 달러를 투자해서 세계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 시스템 ‘바이오 다이제스터’를 개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대도시에서 하수처리를 하듯이 돼지에서 발생하는 분뇨와 유해가스를 모아서 생물학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분뇨를 정화한 물은 축사 청소나 과수 재배 등에 사용된다.
이런 노력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 생긴 여분의 탄소배출권을 일본의 동경전력, 캐나다의 트란스알타 같은 전력회사에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의 카를로스 비베스 대외협력총괄 이사는 “정부의 규제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금전적 이득보다도 지속성장이 가능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티아고(칠레)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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