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좋지 않은 10대 소년 쇼우는 휴양을 위해 한적한 시골 할머니 집을 찾는다. 풀이 우거진 뜰에서 그는 사람 모양의 작은 생물체를 언뜻 보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정체불명의 생물체는 키 10㎝의 소인 소녀 아리에티. 이제 막 14세가 된 소녀는 이웃도 형제도 없이 아버지, 어머니와 단출한 삶을 살아간다. 딱히 생필품을 얻을 방법이 없는 소녀의 가족은 설탕과 티슈 등 인간의 물건을 슬쩍 ‘빌려’ 쓰며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인간 때문에 멸종의 위기에 몰린 그들은 인간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호기심 많은 소녀 아리에티가 쇼우와 조우하면서 가족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징인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영화다. 탄성을 자아내는 꼼꼼한 묘사와 무릎을 치게 하는 별난 상상력이라는 지브리의 장점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발현한다. 장인이 만들어낸 수공예품 같은 화면 하나하나엔 아날로그의 따스함이 배어난다. 모든 그림을 손으로 그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빨간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고 바늘을 칼처럼 차고 있는 아리에티의 모습 등에선 지브리만의 창의성이 느껴진다.
소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거대하고 위압적인 인간 세계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각설탕 하나와 쌀 한 톨이 소인들에겐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흥미롭다.
인간의 이기심과 환경 파괴 등에 대한 지브리의 고발 정신도 여전하다. 멸종을 눈앞에 둔 아리에티 가족과, 그들을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인간의 탐욕은 현대문명에 대한 매운 비판으로 이어진다. 메리 노튼의 영국 동화 ‘마루 밑 바로우어즈’를 밑그림 삼았다. 풍성한 볼거리에 비해 이야기는 다소 단조롭다. 감독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9일 개봉, 전체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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