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발표된 이란 제재 방안을 보면 우리 정부가 적잖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흐름에 동참해야 하는 ‘명분’과 이란과의 교역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 실리’ 사이에서 택한 불가피한 고육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란 제재를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 이어 뒤늦게 내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이란과 거래하는 우리 기업들에 미치는 경제적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제재 조치를 마련한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11월 서울서 개최되는 주요20개국(G20) 회의 의장국인 우리 정부는 유엔의 이란 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의지와 모양새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 천안함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동참을 호소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란 제재에 소극적 자세를 취할 수 없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게다가 북한 핵 문제의 당사국인 우리로서는 이란의 핵 개발 등을 겨냥한 유엔 결의를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여기에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의 이란 제재 동참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운 국제정치적 현실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유엔, 미국, EU, 일본 등 관련국들과의 협의를 거쳐 이란 제재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 7월 발표된 EU 제재 조치와 지난 3일 일본의 제재 조치와 비교하면 유사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다른 나라의 제재 조치가 어떻게 되는지 참고하면서 미국과 의견을 교환했다”며 “EU와 일본의 제재 조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적정선에서 EU 제재안과 일본의 제재안을 절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 제재 조치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이란이 경제적 보복 가능성을 경고한 점을 고려해 최소한의 제재 조치를 취했다는 게 외교가의 분석이다.
이는 정부가 제재 조치와 병행해 이란 중앙은행에 개설된 원화 계좌와 연결될 수 있는 계좌를 우리 시중은행에 개설해 대체 결제 루트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제 주목할 변수는 이란의 반응이다. 이란이 한국의 제재 발표를 문제 삼아 경제적 보복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지난 5일 라민 메만파라스트 이란 외무부 대변인을 통해 “이란에 대해 제재 조치를 취하는 국가는 이란의 잠재력을 이용하는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란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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