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오랜만에 시장에 왔는데 흥정은 끝까지 하셔야죠. 김 사장님! 조금 더 깎아 줘야 손님이 또 오죠.”
8일 오후 충남 아산시 재래시장인 온양온천시장 골목길에 50대 남성의 구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11일 정식개국을 앞둔 온궁미니방송국의 시험방송(6일 시작)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중소기업청이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벌이는 문화 관광형 시장육성사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온궁미니방송국은 청취 구역이 온양온천시장으로 한정된 초미니 라디오방송국. 운영자 가운데 방송 전문가는 한 명도 없고 진행과 DJ 모두 주민과 시장 상인이 맡았다. 특히 이곳의 햇병아리 DJ 8명은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벌써부터 ‘라디오 스타’로 불리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방송국은 사무실부터 초미니다. 시장상인회가 운영하는 250평 규모의 온궁휴양카페 구석진 곳에 자리한 2평 남짓한 DJ박스가 전부다.
그러나 DJ를 공개모집할 때부터 방송국의 인기는 예견됐다. 시장 상인과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 수십 명이 지원, 열띤 경쟁을 벌였다.
시장 방송국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들의 나이는 일반 방송국의 전문 DJ들보다 곱절은 많다. 가장 어린 DJ가 47세이며 최고령자는 65세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게 뜨겁다. 자신들이 만든 방송국의 초대 DJ라는 사명감에 장사하던 도중 하루에 두 시간씩 시간을 쪼개 교육을 받았다. 생전 방송마이크를 잡아 본 적이 없지만 열흘 남짓한 교육 기간 내내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대본 작성, 발성 연습까지 정말 열심히 했다.
홍일점 DJ 이성분(54)씨는 “라디오를 타고 시장에 내 목소리가 퍼져 나간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며 “방송이 온양온천시장에 희망을 일구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방송국의 겉 모습은 초라하고 옹색했지만 시험방송에서 보여 준 프로그램 구성은 짱짱했다. 프로그램은 시장 전용 방송이란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 시장 상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재로 한 ‘사람 사는 이야기’, 부부애를 과시할 수 있는 ‘당신이 좋아’등의 코너는 따뜻함이 넘쳤다. 모든 프로그램을 눈만 뜨면 얼굴을 마주하는 동료 상인이 진행하고, 그것도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의 박중훈처럼 마을사람 이름을 불러 주고 친구에게 대화하듯 다정하게 풀어 가니 더더욱 정감이 흘렀다.
또 시장 구석구석을 손금을 보듯 꿰고 있는 이들의 점포와 상품 소개는 홈쇼핑의 효과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이 방송국의 또 다른 자랑은 온궁휴양카페. 스피커로 듣는 방송이 아쉬운 청취자는 방송국이 있는 이 카페를 찾아가면 더 많은 즐거움을 접할 수 있다. 카페는 창작공방 미니전시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쇼핑 도중 밥을 먹고 차를 마실 수 있으며, 음악 신청도 가능하다. 노래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노래방 기기를 통해 직접 한 곡 뽑을 수도 있다.
한복점을 운영하는 메인 DJ 조규현(54)씨는 “옛날 우물가에서 나누던 정감 있는 이야기들을 방송에서 들을 수 있도록 많은 사연들을 소개하겠다”며 “작은 방송이지만 이웃의 푸근한 목소리로 우리네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산=글ㆍ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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