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에 든 바이올린 활은 손잡이만 남긴 채 부러졌고, 연미복 뒷자락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었다. 녹이 슨 상체는 하체와 색이 달랐고, 가슴팍과 바지에는 조류의 배설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군데군데 부식된 얼굴은 잘 딱지 않아 먼지가 묻은 듯 얼룩덜룩했다. 6일 오후 경기 수원시 팔달구 올림픽공원에서 마주친 홍난파 동상(사진)의 상태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홍난파 동상이 수원시청 맞은편 공원 구석을 지키고 있다. 논란을 의식한 듯 시는 유지관리에 소극적이고, 동상을 바라보는 시민 시선은 엇갈린다.
수원시에 따르면 이 동상은 올림픽공원이 조성된 1989년 민간단체가 세웠다. ‘1989년 10월 14일 한국청년회의소 주최 제 38차 전국회원대회 기념’이라고 새겨진 기단 뒤 동판이 이를 증명한다. 동상 건립은 난파 고향이 수원(현 경기 화성시 남양동)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난파의 친일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2005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가 1차 친일 명단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따라서 동상을 세울 당시에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난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초 발간한 에서도 문화-예술계 친일인사에 포함됐다. 반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같은 달 최종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5명의 명단에서는 제외돼 친일 정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동상을 바라보는 시민 시선도 이런 논란을 닮았다. 주부 이모(32·여)씨는 “음악적 업적을 떼어내 본다면 위인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지만 회사원 김모(38)씨는 “친일 정도가 어떻든 친일행적이 있고, 정확히 따지자면 고향도 화성인데 굳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원 시설물을 유지·관리하는 시는 한동안 동상을 손보지 않다가 훼손이 심해지자 올해 봄 기단 주변과 노랫말이 새겨진 동판 등을 손질했다. 시 관계자는 “동상에 대해 문제 삼은 단체는 없었고, 기증받은 조형물이라 시에서 임의대로 처리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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