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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5) 밴쿠버-올림픽의 유산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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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5) 밴쿠버-올림픽의 유산을 즐기다

입력
2010.09.08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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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나면 쏟아지는 보도는 대개 두 가지 류. 예상 외로 ‘적자’라거나 올림픽 시설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2004년 하계 올림픽이 열린 그리스의 경우 주경기장은 늘 닫혀 있고 주변은 집시촌으로 전락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장기적인 효과를 노리고 올림픽을 개최하는 까닭에 당장의 적자야 그렇다 치더라도, 올림픽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개최지마다 골치 아픈 과제다.

지난 2월 동계 올림픽을 치른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BC)주의 밴쿠버는 올림픽 뒤의 모습이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조사 때면 늘 1, 2위를 다투는 이 도시의 저력은 단지 빼어난 자연환경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올해 조사에서 밴쿠버를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계열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니트는 문화와 환경(100점)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100점), 교육(100점), 인프라시설(96.4점), 안정성(95점) 등 평가항목마다 밴쿠버에 최고 수준의 점수를 매겼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품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뤄낸 밴쿠버 사람들의 솜씨는, 올림픽이 남긴 유산을 잇는 일에도 유감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다목적 지역복합센터로 변모한 경기장

밴쿠버 올림픽의 대표 시설이라면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이 열린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이다. 개ㆍ폐막식이 열린 비씨 플레이스나 피겨 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가 열린 퍼시픽 콜로세움 등은 기존 경기장을 활용했지만 이곳은 올림픽을 위해 1억7,000만 달러가 투입돼 새로 지어졌다.

2층 라운지에 들어서자 먼저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선수의 포스터였다. 이들이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따면서 밴쿠버 신화를 달성한 이곳은 한국인에게도 뜻깊은 장소다. 그들이 은빛 트랙 위에서 감격하던 것이 불과 6개월여 전인데, 이제 이곳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장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400m 얼음 트랙이 돌던 3만3,750㎡ 규모의 경기장엔 6개의 다목적 코트가 자리잡았고 한편에선 아이스하키장 2개를 조성하는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코트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10여명씩 군데군데 모여 농구와 실내축구 등을 하며 북적댔다. 3세부터 15세까지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여름 스포츠 캠프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지난 7월 중순에는 33개국 25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국제 배드민턴 대회가 열렸고 9월 중순에는 세계 휠체어 럭비 대회도 열릴 예정이다. 다목적 코트가 농구, 배구, 배드민턴, 탁구, 핸드볼 등 다양한 경기장으로 활용돼 각종 대회를 유치하는 한편, 경기가 없을 때는 주민들의 생활체육 시설로 사용되는 것이다.

특히 경기장이 내려다 보이는 관중석 자리는 헬스 기구 100여개가 자리잡은 피트니스 센터로 변신했다. 노젓기 체험실, 요가 스튜디오 등 다양한 최신식 시설도 겸비돼 있는데 월 이용료는 성인의 경우 58캐나다달러(약 6만 4,000원). 게리 디 시코 운영부장은 “첨단 시설을 모두 이용하면서도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은 저렴한데, 7월에 문을 연 뒤 2,000여명의 주민이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건물 설계 때부터 다양한 경기를 유치하면서도 주민들의 체육ㆍ건강 센터로 기능하는 복합단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경기장의 변신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8,800만 달러를 들여 컬링 경기장으로 지었던 밴쿠버 올림픽 센터도 아이스링크, 수영장, 유치원, 도서관, 피트니스 센터 등을 갖춘 주민복합센터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 내년에 개장할 예정이다. 쇼트트랙 선수 훈련장으로 사용된 킬라니 링크나 피겨 스케이팅 선수 훈련장으로 쓰인 트라우트 레이크 커뮤니티 센터도 주민 체육시설로 변신했다.

자연과 호흡하는 친환경 시설

특히나 이들 시설은 주민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도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만 해도 2만4,000㎡에 달하는 지붕이 나무로, 그것도 병충해를 입은 소나무로 지어졌다. 나무 자체의 강도는 이상 없지만 나무 표면이 좀먹는 바람에 버려졌던 것을 과감하게 건축자재로 활용한 것이다. 병충해로 얼룩덜룩해진 표면이 독특한 무늬처럼 보여 오히려 돈 들인 디자인보다 더 멋있다. 이 경기장을 만들 때 지붕 자재로 쓸 나무 한 그루를 벨 때마다 두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하며, 경기장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모아 경기장 내 화장실과 정원 용수로도 사용한다.

밴쿠버 시내 콜하버 해안에 위치한 밴쿠버 컨벤션 센터로 찾아가자, 이번엔 한 술 더 떠 2만4,000㎡에 달하는 거대한 지붕이 아예 잔디밭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곳의 지니 우 커뮤니케이션 부장은 ‘그린 빌딩’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빗물 이용, 물 재활용, 바닷물 냉난방 활용…. 특히 건물의 40%는 해수면에 자리잡았는데 바다에 잠긴 주춧돌에는 수중 생물을 위한 서식처도 조성돼 있다고 한다.

올림픽을 위해 3배 가량 증축해 올림픽 기간에 미디어 센터로 사용된 이곳은 친환경건물 국제인증제도인 LEED(Leadership in Energy & Environmental Design)의 최고등급인 플래티넘을 인증받았다. 지니 우 부장은 “전 세계 컨벤션 센터 중 플래티넘 등급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건물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밴쿠버 시내 펄스 크릭 남동쪽에 자리잡은 올림픽 선수촌도 이곳에 뒤지지 않는다. 건물 지붕마다 설치된 태양열 집적판, 길거리에 놓인 태양열 쓰레기통(태양열로 쓰레기를 압축 분해하는 쓰레기통)부터 눈에 확 띄었다. 시민 아파트로 분양되고 있는 이곳은 최첨단의 친환경 주거기술이 도입돼 주목받는 곳이다. 삼중창으로 에너지 손실을 막고, 건물 내벽에 흐르는 물을 냉난방에 이용하며, 심지어 하수도에서 자연 발생하는 열까지 열교환기를 이용해 난방에 이용한다. 이곳 일부 건물은 외부에서 전혀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는 ‘에너지 소비 제로’로 LEED 플래티넘을 인증받았다.

선수촌 건설 사업을 진행한 프로젝트 매니저 빌 아우라씨는 “1,100여 세대 중 250여 세대는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저소득층도 친환경 기술의 혜택을 볼 수 있다”며 “계층 간 융화를 위해 모든 아파트 단지는 의무적으로 일정량의 임대주택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라는 밴쿠버의 명성은 바로 자연환경과 인간이 만든 시설,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한 데 어우러져 호흡하면서 나온 셈이다.

밴쿠버=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인터뷰/ BC주 관광청 맥케이 부청장·BC 올림픽 사무처 크리거 국장

밴쿠버 동계 올림픽의 종합적인 효과를 지금 당장 평가하기엔 이른 시점일지 모른다. 하지만 브리티시 콜롬비아(BC) 주 관광청의 그랜트 맥케이 부청장과 BC 올림픽 사무처 브라이언 크리거 경제 담당 국장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신했다.

올림픽 전후에 각각 실시한 인지도 조사에서 밴쿠버에 대한 관심도는 2배가량 올랐는데, 실제 아시아 지역 관광객 수는 10~20% 증가했고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 관광객도 2.5% 증가했다고 한다. 연간 5만명의 고용 창출, 지하철과 도로 등의 인프라시설 구축, 올림픽 시설 활용을 통한 주민 복지 증대 등 많은 직간접적인 혜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성공의 비결로 강조한 것은 올림픽 개최 6~7년 전부터 실시한 철저한 사전 조사와 이를 통한 계획 수립이었다. 예컨대 올림픽 시설의 경우 올림픽 개최 도시들이 사후에 경기장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많은 조사를 했는데, 상당수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것을 봤다고 한다.

크리거 국장은 "최대한 기존 시설을 활용해 적은 돈을 들였고, 새롭게 지은 시설은 사후에 지역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목적 용도로 설계했다"며 "또 정부는 1억 1,000만달러의 '올림픽 유산 기금'도 조성해 올림픽 시설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맥케이 부청장은 "각 시설이 최신식 기구를 갖추고 있는데다 올림픽 정신이 깃든 장소를 직접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이 아주 만족해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각 시설을 주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올림픽 시설을 첨단의 친환경 시설로 구비한 데 대해 크리거 이사는 "다른 도시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친환경, 지속가능성은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가 누구냐' 하는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밴쿠버= 송용창기자

■ 국내 사례

국내에서 그동안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을 위해 지어진 경기장 중 상암월드컵경기장 등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단순히 경기장을 임대해주는 수익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인데, 이 같은 이유로 인천의 경우 2014년 아시안게임을 위해 주경기장을 신설할 것인지, 문학경기장을 활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간 1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리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은 건물 설계 당시부터 주변 상권을 분석, 경기장에 입점시킬 업종까지 선정해 설계에 반영했다. 실제 할인점, 복합영화관, 사우나, 예식장, 스포츠센터 등을 유치하면서 흑자 경영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노후화되고 이용율이 저조한 체육시설을 복합문화시설로 바꾸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서울 올림픽공원 내 역도경기장은 내부 공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다목적 문화예술 공연장인 ‘우리금융아트홀’로 재개관했다.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도 객석 2,700여석을 갖춘 대중문화 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메인 공연장 외에 240석 규모의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도 별도로 설치돼 재즈, 포크,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의 무대로 사용될 예정이며 대중문화 관련 자료관과 전시관 등도 조성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곳을 순수예술 전용공간인 예술의전당에 비견되는 대중문화의 전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인데 올해 하반기 공사에 착공해 내년 3월 완공 예정이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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