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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점포 사라지고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광주 대인시장/ 전통시장, 현대 미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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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점포 사라지고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광주 대인시장/ 전통시장, 현대 미술을 만나다

입력
2010.09.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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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따, 예술이 어려운 기 아니드만. 거시기 동양화 서양화 깨나 그려야 예술인 줄 알았는디, 소소헌 거라도 눈에 불 키고 보믄 예술이드만."

국수 삶느라 분주한 손만큼 예술을 논하는 풍물국수 사장 이향순(62)씨의 입담도 쉴새 없다. "처음엔 볼 줄도 모르고 잘 몰랐는디 요새는 눈요기가 되드만. 자꾸 접하다 보니께 그런 거 아니겄어. 인자 나도 예술 좀 알어야." 도 통한 듯한 설명에 젖어들 무렵 이씨가 젖은 손을 닦으며 싱긋 웃었다. 국수 아줌마와의 만남은 시작에 불과했다.

6일 오후 광주 대인동 재래시장인 대인시장 입구는 고추, 젓갈, 전, 생선과 채소 등이 뿜어내는 장터내음 그득한 여느 시장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생소한 풍경이 펼쳐졌다. 고추 젓갈 좌판을 지나자 벽면이 온통 홍어그림으로 채워진 가게가 나왔다. 어물전 구석에 있는 한 가게 안엔 삽 한 자루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도무지 장사와는 무관해 보이는 것이, 상인들 말마따나 "암시랑토 않게" 가게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살뚱맞은 삽을 가리켜 '삽질 기계'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큐레이터 뺨치는 김춘자(72)씨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김성우 작가란 양반이 만든 것인디, 요로코롬 핸들을 돌리믄 삽이 허공에서 뱅뱅 돌아. 뭐시더라, 잉 4대강 사업이 허공에서 삽질하는 거를 말한다나." 홍어 벽화를 그린 박문정(54) 작가는 "'만만한 게 홍어X'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홍어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등장하는, 약자를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했다.

이밖에 시장 곳곳엔 입체(조각), 그림,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이 잡다한 시장물건과 보기 좋게 어우러져 있다. 시장과 예술의 조화, 대인시장의 변화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대인시장은 광주역과 시외버스터미널 등 교통요지에 자리한 덕에 한때 광주에서 손꼽히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시외버스터미널이 이전하고 근처 주거지역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10년 전부터는 점차 문을 닫는 가게가 늘었다. 최근까지도 점포 330여 곳 중 70~80곳이 빈 채로 방치돼 있다.

쇠락하는 시장의 빈 점포를 메운 것은 젊은 작가들이었다. 2008년 '광주 비엔날레'를 계기로 작가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인 재래시장을 지키자며 이곳에 뛰어든 것이다.

작가들의 공동작업장인 미나리의 박성현 감독은 "비엔날레라는 서구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이야기들을 꺼내 보여주자는 인식이 있었고, 재래시장은 현대성이 놓칠 수 있는 정과 에누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적합한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과 예술의 조화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다. 대인시장 상인들은 대부분 60~70대로 40년 이상 장사만 해왔다. 간극 줄이기가 필요했다. 작가들은 문 닫은 점포를 빌려 작업실을 만들고, 상인들이 예술과 쉽게 접하도록 시장 곳곳을 문화지대로 탈바꿈시켰다.

함평통닭의 곽근례(71)씨 가게에는 실물보다 큰 초상화가 붙어있다. "박태규 작가가 그려줬재, 그래가꼬 나가 시장에서 유명 할매로 되브렀어. 기분 오지재. 학생들이 사진 찍을라고도 온당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포스터를 패러디한 통닭집 간판도 인기만점이다. 주인공 문희, 신영균 얼굴대신 닭 파는 아주머니들의 얼굴로 바꿔 그린 것이다.

시장 한편에는 무인(無人)카페도 만들었다. 상인들이 들어와 스스로 차를 끓여 먹고 '자율저금통'에 알아서 돈을 넣으면 된다. 장경훈(64)씨는 "내가 들어가면 내가 주인이고 사장이여, 카페에서 나오면 다시 객(客)이 되는 거시여"라고 했다.

상인과 작가들의 소통은 신인 작가(?) 발굴로 이어졌다. 평생을 어물전에서 살았던 여수상회 박문조(72)씨는 독특한 필체로 생선이름을 판에 적어 팔았는데, 이 글씨가 전문작가들의 눈에 띈 것이다. "아따 기냥 쓴 거인디, 언제부턴가 (작가들이) 와서 징하게 귀찮게 하드만. 옛날엔 펜이 없어 나무 깎아갖고 펜촉을 묶어갖고 먹물로 쓰고 그랬재." 작가들의 간곡한 부탁에 박씨는 곧 개점하는 무료장비대여점 '다다익선'의 상호 글씨를 직접 써주는 영예를 누렸다.

작가들은 시장상인과 방문객이 쉬면서 노래와 춤을 배우는 오두막집 '다락', 시장 내 못 쓰는 물건을 모아 팔아 수익금 일부를 어려운 이웃 돕기에 쓰는 '장깡' 등을 만들어 상인들과의 소통을 도모하고 있다.

현재 대인시장에는 약 38명의 작가가 먹고 자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일본과 카자흐스탄 등 해외작가도 있다. 시인과 사진설치, 공예, 입체(조각), 댄스 퍼포먼스, 인형극 등 분야도 다양하다. 이들이 터를 잡자 재래시장을 찾지 않던 젊은 층의 방문도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올해 '대인예술시장 느티나무숲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전고필 총감독은 "시장은 삶의 문화가 총체적으로 모이는 보고다. 느티나무의 수많은 가지처럼 그 이야기들을 예술에 담고 싶다"고 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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