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구글을 만든 세르게이 브린은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모스크바의 가난뱅이였던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 부단한 노력 끝에 각자 수학교수와 과학자가 됐다. 브린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성공요인에 대해 "과학과 학문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던 아름다운 수학적인 것들"이라고 말했다. 수학적 재능을 격려해준 부모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구글을 만든 원동력은 수학과 과학이다. 애플 신화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특별한 맛을 내기 위한 양념일 뿐, 주재료는 어디까지나 과학기술이다.
'경영학의 아인슈타인'이라는 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일본이 성공한 것은 일본인들이 미국인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이고 공학자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던 1980년대 초 미국 인구는 일본의 3배에 달했지만, 수학 과학 공학을 전공하는 미국 대학생 수는 일본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올해 한국을 방문한 그는 "번영이 교육을 방해하는 적"이라고 진단했다. 일본경제의 도약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최근 30년간 수학ㆍ과학ㆍ공학 교육을 강조했지만, 학생들은 호황의 혜택에 안주해 쉽고 재미있는 학문에만 매달렸다는 지적이다.
수출 7위 원동력은 수학ㆍ과학
미국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업체 설립자들은 대개 뛰어난 과학자나 기술자들이다. 대부분 러시아나 동유럽, 인도, 중국 등에서 온 이민자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이민자들은 수학ㆍ과학 공부의 고통을 감내했지만, 번영의 달콤한 과실에 길들여진 IT기업 창업주의 자녀들은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려 들지 않는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제 자녀들이 (수학 과학을 공부하는) 고통 없이 번영을 누릴 수 있는데, 왜 그런 고통을 느끼게 하고 싶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동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이공계에 재능이 있는 이민자들이 계속 유입되지 않으면 미국경제는 설 자리가 없는 셈이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수출 규모는 2,215억달러로, 사상 처음 세계 7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영국을 제치고 9위에 오른 데 이어 다시 두 계단 뛰어올랐다. 자동차 반도체 일반기계 등의 성장세가 지속된 덕분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TV 휴대폰 등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선박 등의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정상급이다. 한국의 경제적 성공은 교육의 힘이다. 특히 이공계 경쟁력이 밑바탕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화학ㆍ조선 공학과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인기학과로 떠올랐다. 엔지니어에 대한 우대와 병역 혜택 등 각종 지원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IT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80년대에는 전자공학과가 큰 인기였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이공계 전국 수석 중 3분의 2가량은 서울대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오늘날 반도체ㆍITㆍ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일군 원천이다.
과학기술 인력 양성책 확립을
하지만 10년, 20년 후에도 지금의 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80년대 남자 고등학교의 문ㆍ이과 비율은 1대 2였지만, 지금은 문과 지망생이 더 많다. 학생들은 수학 과학이 힘들고 재미없다며 기피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 4년제 대학의 과학기술 전공 졸업자는 2008년 6만8,000명에서 10년 뒤인 2018년에는 오히려 3,000명이 감소할 전망이다. 경제적 번영이 지속되면서 수학과 과학, 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이다. 질적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공계 우수학생들이 의ㆍ약학, 심지어 로스쿨 MBA 공무원시험 등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날로 심화하고 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시대다. 교육은 경제성장을 위한 핵심 투자재이다. 이공계 교육의 질과 수준이 경제성장의 질과 수준을 좌우한다. 과학기술 인력을 키우기 위한 정책수단도 없으면서 10년 후 먹거리나 미래 성장동력을 얘기하는 것은 우습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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