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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멸치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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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멸치의 아이러니

입력
2010.09.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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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멸치가 싫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

시를 쓰면서

멸치가 더 싫어졌다

안 먹겠다

절대 안 먹겠다

고집을 꺾으려고

어머니는 도시락 가득 고추장멸치볶음을 싸주셨다

그것은 밥과 몇 개의 유순한 계란말이 사이에 칸으로 막혀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흩어져 있다

시인의 순결한 양식

그 흰 쌀밥에서 나는 숭고한 몸짓으로 붉은 멸치를 하나하나 골라내곤 했었다

시민의 순결한 양식

그 붉은 쌀밥에서 나는 결연한 젓가락질로 하얘진 멸치를 골라내곤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나는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몇 달 간 떠들기 시작했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그 말이 듣기 싫어 나는 멸치를 먹었다

멸치가 싫다, 기분상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

(중략)

총체적으로 폼을 잡을 수 없다는 것

그 머나먼 폼

왜 이토록 숭고한 생선인가, 숭고한 젓가락질의 미학을 넘어서 숭고한가

멸치여, 그대여, 아예 도시락뚜껑을 넘어 흩어져준다면,

밥알과 함께 쏟아져만 준다면

그 신비의 알리바이로 나는 영원토록 굶을 수 있었겠네

두 눈 속에 갇힌 사시의 맑은 눈빛으로

다른 쪽의 눈동자를 그립게 흘겨보는 고독한 천사처럼

● 어릴 때는 열무를 잘 먹지 못했습니다. 그 질감은 질기고, 맛은 쓰고. 열무라면 손을 내저었지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열무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내가 싫어하는 열무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뭐 그런 마음이었다고나 할까요. 과연 아이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되니까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 그런 마음이 자주 들진 않더군요. 반찬으로 열무가 나와도 그게 좋거나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냥 씹어 먹습니다. 하지만 맛은 없어요. 열무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우린 얼마든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데, 입맛 같은 게 꼭 우리 발목을 잡지요. 멸치 안 먹는 년도 노동해방할 수 있어요, 라고 항변해 봐도 역시 폼이 안 나요. 폼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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