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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개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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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개미 생각

입력
2010.09.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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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개미가 많은 집에서 한동안 살게 됐다. 저녁 때 설거지를 미뤄두고 자거나 바닥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들을 그대로 남겨 놓으면 아침에 새까맣게 몰려있는 개미들을 발견하게 된다. 온 집안의 개미뿐만 아니라 온 동네의 개미가 다 몰려든 것처럼 그야말로 엄청난 개미들이다. 그 많은 개미를 한꺼번에 치워버리는 방법은 약을 뿌리는 것뿐인데, 그렇게 하면 약 냄새에 위협을 느낀 여왕개미가 다른 집을 지어 개미가 더 늘어난다고 한다.

내 탓, 네 탓 않고 공존

이미 충분히 많을 만큼 많은 개미니 더 늘어나는 것이 무서울 것은 없으나 아침마다 거대한 살육을 해야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일 수가 없어 좀 더 신경을 써서 청소를 하기로 했다. 그래도 개미들은 몰려든다. 주스 잔이 놓였던 자리, 쓰레기통 주변, 흘렸는지도 알지 못했던 과자 부스러기 위로. 심지어는 세면대의 보이지 않는 치약 찌꺼기를 찾아서도 몰려든다. 못 참을 지경이면 약도 뿌리고 쓸어버리기도 하고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저것들도 살자고 먹자고 하는 일인데, 나를 크게 괴롭히지만 않으면 그까짓 남은 것 가져가게 놔두자.

그런데 내가 그토록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었던가? 그럴 리는 없다. 마당 있는 집에서 어차피 개미들을 완전히 소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고, 개미 많은 이 집에서 영원히 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견뎌야 하니 어떻게든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응의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이, 그냥 내 탓이오, 해버리는 것이다. 개미들이 나를 이 집에 불러들이지 않았으니 이 집에서 사는 것도 내 탓이오, 개미들이야 저 먹을 것 찾아 움직이는 것이니 먹을 걸 거기다 남겨둔 것도 내 탓이다. 그거 못 참고 죽이는 것도 내 탓이다. 그러니 내 탓 아니려면, 그저 열심히 치우고 또 치우고 그러고도 안 되면 견디는 것뿐이다.

하다 보니 내 탓이오 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없다. 이 집 마당에는 무는 개미도 있어서 마당을 쓸다 보면 흔히 발등이나 발목 따위를 물리게 되는데, 따지고 보니 물리는 것도 내 탓이다. 멀쩡히 살고 있는 개미집을 쓴 것도 내 탓이고, 그 근처에 갔던 것도 내 탓이다. 선승의 경지에 올라서가 아니다. 다 나 편하자고 먹는 마음이다. 남 원망하고, 세상 어지럽게 돌아가는 거 탓하거나 분노하면서 마음 부대끼는 거 싫고, 마음 너그러운 사람 흉내 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착한 나와 나쁜 너를 가르는 기분도 괜찮은 것이다. 그러면서 고작 개미한테인데 어떠랴 라고 하지만 어디 개미에게뿐이겠는가. 세상 모든 것에 그러하지는 않겠는가. 내 탓이오 하면서 고개 돌려버리는 순간 정작 힘 가진 사람들은 망설임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이 네 탓이오 하는데, 그런 말 듣는 것조차 내 탓이다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고 보니 개미들은 절대로 내 탓도 네 탓도 안 한다. 생존의 법칙을 쫓아 쉬지 않고 움직일 뿐이겠다. 개미들이 게으르거나 그 자리에서 혼자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공존해야 하기 때문일 터이다. 개미가 내 발등을 물때, 저 혼자 살자고 하는 일인지 아니면 무리를 지키고자 하는 일인지는 나는 모르겠다. 한 가지 아는 것은 그저 사정없이 물어버린다는 것뿐이다.

부끄러움 없는 사람들

사람 사는 세상은 누군가가 나를 해친다고 해서 쉽게 물 수도 없고, 사정을 안 볼 수도 없다. 그 세상살이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려면 온 평생이 다 걸리겠다. 그렇더라도 한 마디 할 수 있는 것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네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 내 탓이라고 말하면서도 절대로 그렇게 생각 안하는 사람들에게는 단호히 말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그것은 그들 탓이라고 말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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