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바치 가죽냄새 어물전 생선냄새/ 오입쟁이 주정뱅이 왈짜에 각설이에/ 기생에 한량까지 깍쟁이 무뢰배에/ 왜놈에 뙤놈까지 함께 살 비비는 곳…”
지난 4일 개막한 뮤지컬 ‘피맛골 연가’ 1막은 이 노래로 열린다. 배경은 서울의 대표적 뒷골목인 종로 피맛골.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 냄새 나는 풍경이 무대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1막에서는 조선시대 초가가 즐비한 저자 거리, 2막에서는 1900년대 초 모던보이 모던 걸들의 놀이터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작품은 이승과 저승,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등 시공간을 초월하며 금지된 사랑에 대한 열망을 그린다. 주인공 김생(박은태)과 홍랑(조정은)은 신분 차로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저승에서 해후하는데,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의 내용과 닮아 있다.
흔하디 흔한 소재지만 극작가 배삼식의 대본은 빛난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골계미를 한껏 살리고 우리말의 특징을 적극 활용했다. ‘뻐꾹’ ‘야옹’ 등의 의성어와 ‘알록’ ‘얼룩’ 등의 의태어가 대구를 이루며 박자감을 형성한다. 서양 장르인 뮤지컬에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대본은 희소한 까닭에 그의 이런 시도는 매우 의미있다.
작곡가 장소영의 ‘아침은 오지 않으리’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 등은 강한 중독성을 보이며 극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의 입에 맴돌았다. 주인공을 비롯한 실력파 배우들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다만 2막에서 서출(庶出)의 ‘서’와 쥐를 뜻하는 ‘서(鼠)’를 연결, 무대가 인간 세계와 쥐의 세계를 넘나드는 부분은 유치하고 억지스럽다. 이때 사용되는 힙합 음악도 전달력이 다소 떨어져 아쉬움을 더했다.
창작뮤지컬은 끊임없이 수정, 보완되어야 한다. ‘피맛골 연가’는 서울이 무대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서울시가 18억원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이 단체장 임기 후에는 힘을 잃어버리는 기존의 관 주도 뮤지컬의 행로를 답습하지 않기 바란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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