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임명되면 입부터 닫는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직위의 무게와 비중이 말수를 줄이게 만든다. 중수부 권력의 원천은 축적된 범죄 정보에 있다. 권력형 부정부패, 대기업 비리 등 대형 사건화할 수 있는 정보는 그 중 핵심이다. 그러니 중수부장이 칼을 조금만 꺼내 보여도 평지풍파가 인다. 중수부장이 여간해선 입을 열 수 없는 이유다. 대신 중수부장은 수사로 말한다. 퇴직 후에도 재직 시 취득한 범죄 정보는 말하길 꺼린다. 그것은 공무원의 비밀엄수 의무 이전에 최고 사정 부서를 지휘했던 인사로서 금기로 여기기 때문이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논란이 재점화됐다. 발화자는 지난해 중수부장으로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 변호사.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현오 경찰청장이 언급한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에 대해 "틀린 것도, 맞는 것도 아니다.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 "검찰이 '그런 것 없다'고 했는데,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하면 될 것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차명계좌의 존부(存否)를 놓고 상반된 해석을 할 수 있는 아리송한 발언이다.
■ 박연차 게이트 수사 전반을 꿰뚫고 있던 전 중수부장으로서 함께 수사에 참여한 검찰 관계자의 차명계좌 부존재 발언을 비판한 점은 차명계좌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중부정을 통해'수상한 돈 흐름=차명계좌'라는 등식을 강조한 것은 의아하다. 차명계좌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과, 차명계좌를 최종 확인한 것은 아니라는 정반대 해석이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명계좌는 명의 대여자의 자백이 없으면 차명계좌로 확정하기 힘들다. 이를 잘 알고 있을 사람이'수상한 돈의 흐름'만으로 차명계좌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려 한 의도가 뭘까.
■ 노 전 대통령'압박 수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인사가 알듯 모를 듯한 말로 노 전 대통령의 명예와 관련된 의혹을 부추긴 것은 부적절했다. 불의와 부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소신 발언이었다면 명확한 언어로 사실관계를 공개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이 당당하고 분명한 태도다. 한편으론 노 전 대통령의 명예와 도덕성을 깍아 내리면서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검사장 승진을 거론하며 노 전 대통령의 순수성을 평가하는 종잡을 수 없는 언변은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최고 사정 부서의 책임자로 일했다면 사석에서의 발언이라도 가려서 할 일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