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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의 휴먼드라마] <2> 나의 한일 관계 - 일본인 군사 교관 엿 먹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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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열규의 휴먼드라마] <2> 나의 한일 관계 - 일본인 군사 교관 엿 먹이기

입력
2010.09.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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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일본인 친구, 그것도 중학교 때 절친한 한 반 친구였던 호리에에 관한 두 번째 얘기다. 지난 번, 연재 1회의 속편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호리에와 나 사이에는 국적이나 민족의 차이 같은 것은 없다시피 했다. 그저 막역한 친구였다. 조선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이 거의 반반인 우리 학급에서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호리에와 친했다. 친해도 예사 친했던 게 아니다. 그는 성격이 순박하고 활달했다. 누구든 한 반의 클래스메이트와는 격의 없이 대했지만 나와는 아주 각별했다.

그러던 중에 아주 특별한 경우의 특별한 일이 그와 나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 때, 중학교 1학년이던 우리는 군대식 ‘야간 행군’을 하게 되었다. 부산 교외의 들길이며 언덕길을 50㎞는 더 되게 줄을 지어서 밤새 걷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10대 초반의 소년들에게는 가혹하고도 혹독한 강훈련이었다. 넷이 나란히 걷되, 가운데 둘이 각각 바깥 쪽 급우(級友)의 어깨에 팔 걸치고는 잠자는 시늉을 지으면서 걷기도 했다. 한 학년이 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게 초저녁 보내고 한밤중이 되었을 때, 우리는 휴식을 겸해서 야식(夜食)을 해 먹게 되었다. 그 밤참이란 게 겨우 해야 몇 그룹으로 갈라져서는 직접 밥을 짓고는 소금 끼얹어서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다들 배고팠던 탓에 허급지급 먹어댔다. 이상하게 먹기를 서두른 호리에가 나더러 미리 약속된 대로 팥을 내 놓으라고 했다.

그는 밥 먹고 비운 ‘한고’라고 하던 양철 밥그릇에다 팥을 급히 삶기 시작했다. 거기다 제가 가지고 온 밀가루와 설탕을 끼얹어서는 단팥죽을 끓였다. 미리 불을 달구어 둔 탓에 인스턴트의 단팥죽이 금방 완성됐다.

그는 직접 맛을 보았다. 쪽쪽 입맛을 다시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나더러도 맛보라고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설탕의 단 맛이 그럴 듯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라서, 설탕은 아주 귀했다. 겨우, 부산시 당국에서 배급으로 주는 것을 눈곱만큼 얻어걸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호리에는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설탕을 담뿍 팥죽에 넣었다. 아마도 제 어머니가 애 써서 모아서는 따로 간직해둔 것을 훔쳐 낸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와 내가 맛을 보고 난 다음, 그는 단팥죽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서는 그는 느닷없이 엉뚱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릇에다 대고는 느닷없이 코를 풀었다. 콧물 반, 침 반, 그걸 단팥죽에 끼얹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 그릇을 내밀었다.

“자, 너도 여기다 코 풀어!”

나는 영문을 몰랐다. 어제 그가 내게 팥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야간 행군 하다 말고 야식을 할 때, 단팥죽을 끓여 먹자고 한 건데, 온 세상에 이게 무슨 짓이람? 어정쩡해 있는 나를 그가 독촉했다.

“빨리 코 풀라니까!”

“왜 이래, 뭐 하자는 거야?”

그제야 호리에는 싱긋하면서 털어 놓았다.

“응, 그 놈의 군사 교관에게 갖다 줄 거야.”

나는 머뭇대었다. 거듭되는 그의 독촉을 받고서야 겨우, 단팥죽에 내 코를 푸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는 두 팔로 귀한 물건 다루듯이 우리 콧물 섞인 단팥죽 그릇을 받들었다. 그리고는 행진하듯이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얼마 뒤에 그는 의기양양하게 되돌아 왔다. 그리곤 옆에선 못 알아듣게 소곤대듯이 내게 말했다.

“그 조교 작자, 우리 코 맛나게 먹었어!”

“왜 그랬지? 들키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뜨악해진 나의 궁금증을 푸는 듯이 그가 대답했다.

“너희들 대신 내가 복수한 거야. 너와 같은 조선 학생들 하나도 나쁠 것 없는데, 그 자는 까닭 없이 ‘조센징(朝鮮人)’이라고 욕하고 했으니 천벌 받아도 싸지! 우리 코는 말이야 그에겐 약이야, 약!”

그리곤 웃어댔다. 난 그때서야 빙긋 웃었다. 공범의 합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부산 시내의 대표적으로 큰 신사(神社)의 주지의 아들이었다. 부산의 일본인들 가운데서도 내로라하는 명문 집안의 큰 아들이었다. 한데도 그는 어쩌면 들통 나서 엄벌에 처해질지도 모를 짓을 자진해서 저지른 것이다. 조선 학생 편들어서 그런 짓 한 게 드러나면, 퇴학처분을 당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한데도 그는 감히 우리의 ‘코 단팥죽’을 일인 군사교관에게 먹였다. 물론 그것은 단지 조선인 학생을 위한, 그 중에도 나를 위한 우정의 표시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의 의거(義擧)였다. 조선인 친구들을 위해서 일본 군부에 대든 레지스탕스였다. 의로운 행사였던 것이다. 그에게서는 우정이 군국주의에 기운 애국심보다 더 소중했던 것이다.

그가 조선인 학생에게 베푼 우정, 그것은 한일 간에 문제가 생기고 말썽이 생길 적마다 언제나 나의 가슴에 사무치곤 한다. 이 다음 혹 그를 만나는 요행을 누리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진짜 단팥죽을 끓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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