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산문가인 청장관 이덕무(1741~1793)가 스승이자 대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명 산문을 뽑은 뒤 비평한 ‘종북소선(鐘北小選)’이 처음으로 번역됐다. 박희병 서울대 교수, 정길수 조선대 교수 등 소장 한문학자 7명이 번역했으며 번역 책임자인 박희병 교수의 ‘종북소선’ 연구서 (돌베개 발행)도 함께 나왔다.
‘종북’이란 종각의 북쪽이라는 뜻으로 이덕무가 살던 인사동 집을 의미한다. 따라서 책 제목은 ‘이덕무가 엮은 작은 선집’이라는 뜻이다. 서문을 쓴 날짜는 1771년 10월로 되어있다. 이덕무가 평선한 박지원의 산문은 ‘관물헌기’ ‘염재당기’등 모두 10편. 이덕무는 구두점을 찍거나 권점(圈點ㆍ빼어나거나 주목할 문장 오른쪽에 표시하는 기호), 방비(旁批ㆍ작품 행간 사이의 평어), 후평(後評ㆍ작품 말미에 붙이는 평어), 미평(尾評ㆍ작품이 필사된 면의 상단부에 붙이는 비평) 등 다양한 형식으로 연암의 산문을 평하고 있다.
책은 이덕무가 직접 필사했는데 다양한 수사로 작품을 평한 ‘미평’을 본문과 공간적으로 구획한 것이 특징이다. 또 박지원의 글은 먹으로 썼고, 평어는 주홍색, 권점은 청색으로 처리했다. 이는 이덕무가 ‘종북소선’을 독자성을 지닌 완결된 예술작품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박희병 교수는 설명했다.
홍대용이 소장하고 있던 ‘종북소선’은 박지원가에 전해져 후손이 보관하고 있다가 1987년 공개됐는데 지금은 사진자료만 남아있을 뿐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엮은 ‘연암집’에 내용이 실려있어 박지원이 자찬(自撰)한 책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박 교수는 “이덕무가 스스로 서문을 쓰고 엮은 단독 저술”이라고 논의를 정리했다. 책 제목 다음에 ‘좌소산인(左蘇山人)’이 지었다는 표기가 있는데 박지원이 ‘벽매원잡록’이라는 책에서 ‘좌소산인’은 ‘선귤당’ ‘청장산사’ 등과 함께 모두 이덕무를 지칭한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종북소선’은 작가와 비평가가 맺고 있는 아주 깊고 독특한 관련성으로 인해 비단 한국문학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학사 전체를 통틀어 보더라도 특이한 광채를 발하는 문헌”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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