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조현초등학교는 2006년만해도 폐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학교 문을 닫는 게 기정 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인근 3개 학교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학생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2007년 공모제를 통해 부임한 이중현 교장과 교사들이 도전한 ‘새로운 학교’시도가 성과를 거두면서 인기 학교로 탈바꿈하고 있다.
80여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도 지금은 2배 이상 늘어 180명이 넘는다. 기존 6개 학급에 2개를 증설한 데 이어 4개 교실을 더 늘리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조현초 재학생의 70%는 서울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 전학 왔다. 속이 꽉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원형 혁신학교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학교 인근으로 이사를 오는 사람도 늘었다.
불과 1년 사이에 인근 부동산 가격이 1.5배로 올랐고 전세가도 2배 이상 뛰었다. 이런 특수를 반영한 듯 주변엔 40가구 연립주택 신축공사도 한창이다. 다른 혁신학교들도 비슷하다. 혁신학교의 인기몰이의 비결은 무엇일까. 조현초교 사례를 통해 대답을 찾아봤다.
‘조현 오름길’을 아시나요
교사가 11명에 불과한 미니 학교지만 조현초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웬만한 학교를 능가한다. 그 중에서도 특유의 학업 시스템을 학부모들은 가장 반긴다.
‘조현 오름길’이라는 이름의 학력증진프로그램은 점수보다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들이 잘하는 부분을 찾아 찾아 칭찬함으로써 성취감을 맛보도록 하는 게 목표다. 학교 측은 “학생들은 스스로 목표를 찾게 되고 자연스레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이 길러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있다. 정해진 하나의 답을 찾게 하기 보다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논술을 통해 학력을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기본적인 학업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ㆍ운영하느라 바쁜 교사들 대신 외부강사들을 초빙해 기초학력 지도를 별도로 하고 있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선 주 2회 미술 심리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이 밖에도 맞벌이 부모 등을 위해 오후 9시까지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꿈나무 안심 프로그램, 국어 영어 수학 외 학생 개개인이 가진 관심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전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연 6차례 책 저자들을 초청해 만남을 갖는 행사도 학생들한테는 대인기다. 이 학교 이중현 교장은 “경쟁교육에서 벗어난 분위기 덕에 사교육 부담은 남의 학교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교사의 혁신 의지와 학부모의 변화가 성공의 핵심
“교육과학기술부와 16개 시도교육청은 많은 예산을 들여 저마다 획기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어요. 하지만 교사들의 적극적 참여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든 무용지물이 아닐까요.”
이중현 교장은 “우리나라 모든 학교가 같은 교과서에 획일화한 학사일정을 따라가는 상황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ㆍ운영해야 하고 교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라고 이 교장은 강조한다.
2007년 부임한 이 교장은 교사들과 6개월간 매일 밤샘 잡업을 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조현교육과정 9가지 형태’라는 독창적인 교육과정이다. 기본 교과 및 재량 활동은 물론 연간 34시간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해 진행하는 ‘어울마당’은 조현초교만의 자랑이다.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동아리 활동도 지원한다. 학교 측은 학생ㆍ학부모 요구 등을 반영해 프로그램을 꾸준히 수정 보완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는 체험을 하거나 생태탐방을 가는 등 교실 밖 수업이 많은 탓에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며 불만을 늘어놓는 학부모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생활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의 생각도 점차 변해갔다. 교육의 방향에 대해 교사ㆍ학부모간 쉼없는 소통이 계속됐고, 지역 사회의 도움이 더해져 만족도 높은 학교가 탄생한 것이다.
공동화 서울 도심초교에 적용 해도 될 듯
혁신학교 중 특히 조현초교가 주목받는 이유는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통ㆍ폐합에 내몰리는 대도시 초교들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학교일수록 새로운 시도가 쉽고 학부모ㆍ교사간 소통도 원활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규모가 큰 일부 학교에서는 학년 단위 등으로 운영을 분할하는 식으로, 성공한 혁신학교 모델을 적용하는 시도도 있다.
김종숙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전원학교를 포함한 경기도 혁신학교 모델은 서울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며 “교육청이 일방적 모델을 정해 따르도록 하기 보다 학교 스스로 변화하도록 지원하는게 바람직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평=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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