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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마라톤 대표팀, 대구세계육상 현지코스 적응훈련 따라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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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마라톤 대표팀, 대구세계육상 현지코스 적응훈련 따라가 보니

입력
2010.09.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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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감독 "스피드가 아니라 더위에 강한 선수가 메달 가져갈 것

"한증막 같은 더위가 오히려 기회다" "선두와 간격을 너무 벌리지 마라" "바깥 노면상태가 안 좋으니 도로 한 가운데로 뛰어라."

황영조(40) 마라톤 기술위원장겸 국가대표 감독의 작전지시가 확성기를 타고 쉴새 없이 이어진다. 5일 오전 9시.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앞 6차선 대로. 마라톤 남녀 국가대표팀(남자 15명ㆍ여자 6명)이 스타트 라인에 섰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온도계는 벌써 3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바람은 미동조차 없었다.

마라톤 남녀 대표팀이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코스 현지적응훈련에 나섰다. 국채보상기념공원을 출발, 청구네거리-수성네거리-두산오거리-수성못-대구은행네거리-반월당네거리 15㎞ 구간을 두 번 왕복한 후 12.195㎞를 더 달리는 코스다. 대구세계선수권 마라톤 경기가 꼭 1년 후 이 자리에서 출발총성을 울린다.

대표팀이 이날 소화해야 할 거리는 40km. 대구지방경찰청에서 30여명의 지원인력과 사이카 8대, 순찰차량 4대를 투입해 도로 통제에 나섰다. 출발에 앞서 계명대 체육대학 김기진 교수팀에서 선수들의 심장 박동수와 젖산, 혈액농도 등을 체크했다.

출발 10분여가 지나자 선수들의 몸에서 땀이 물처럼 흘렀다. 유니폼은 이미 물에 젖은 스펀지 마냥 흥건하다. 물을 찾는 손놀림이 바빠졌다. 하지만 황감독은 "레이스 도중 물 마시는 것도 훈련"이라며 "갈증 난다고 아무때나 주지 말고 5km마다 공급하라"고 코치진에게 지시했다.

황감독은 "내년 세계선수권 메달은 스피드가 아니라 더위에 강한 선수들이 가져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폭염과 싸워 이기는 선수만이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감독은 그러나 "우리 선수가 강점을 보이는 오르막 구간이 거의 빠진 코스설계가 아쉽다"며 "승부처를 어느 지점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감독이 직접 운전대를 잡은 7인승 '작전 차량'엔 김교수팀이 함께 했다. 김교수팀은 5km 구간마다 선수들의 젖산을 체크하고 10km마다 혈액과 심박동을 측정했다. 마라톤 레이스도중 선수들의 몸 속 변화를 측정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 김교수는 "어느 선수가 더위에 강한가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측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30여분 후 열기에 달궈진 도로는 연신 뜨거운 입김을 토해냈다. 수성못 구간에서 200m에 달하는 오르막이 나타나자 황감독이 "평지와 오르막 상태를 직접 느껴보라"며 선수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이 기권하기 시작했다. "마라톤은 몸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정신력으로 달린다"는 황감독의 질책이 쏟아졌지만 소용없었다.

마라톤 훈련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폭염속 현장실습 아이디어를 낸 황감독은 "한국마라톤이 내년 세계선수권에서 살 길은 코스 경쟁력과 기후 경쟁력 두 가지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코스는 이미 확정돼 개최국의 어드밴티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황감독은 그러나 "대구 특유의 무더위에 적응하면 우리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다른 나라 선수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현지코스 적응훈련이 홈 그라운드의 이점 아니냐"고 반문했다.

황감독은 이어 "더위 앞에서 스피드 마라톤은 힘을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구력이 메달 색깔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현역 한국최고기록을 보유한 지영준(29ㆍ코오롱ㆍ2시간8분30초)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10km 구간에서 지영준의 젖산을 체크한 결과 5km지점보다 농도가 두 배 이상 짙게 나타났다. 다른 선수들이 1.8정도의 농도를 나타낸 반면 지영준은 4.9를 보였다. 젖산 농도가 짙으면 그만큼 피로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지영준은 결국 15km지점에서 기권했다. 레이스 후 지영준은 "더위 때문에 포기한 것이 아니라 허벅지 뒷근육(햄스트링)에서 무리가 온 듯 싶어 기권했다"며 "이번 하계훈련 중 가장 좋은 경험을 했다"고 웃어 넘겼다.

어느덧 2시간이 지나자 온도계는 31.2도까지 치솟았다. 김영진(27ㆍ수원시청)과 조원준(27ㆍ경기도청)두 명만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황감독은 하지만 이들의 심박수가 150~170선으로 기대를 밑돈다며 적어도 190~200선으로 끌어올려야 메달을 다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봄, 가을에 작성한 2시간 7~8분대 기록은 폭염속에서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것"이라며 "더위사냥이 메달을 가늠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레이스를 지켜본 임상규(삼성전자 여자마라톤)감독은 "비록 5km 19분 페이스로 '빠른 조깅수준'의 레이스였지만 선수 개개인에 대한 피로도 파악과 더위 적응도를 데이터로 확보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내년 대구세계선수권 마라톤은 여자부가 대회 첫날인 8월27일, 남자는 마지막 날인 9월 4일 각각 레이스를 펼친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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