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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은 '소원화개첩'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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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은 '소원화개첩' 찾을 수 있을까

입력
2010.09.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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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원에 꽃이 흐드러졌는데/ 뒷문 앞에 있으니 그 초라함에 감개가 무량하네/(중략)/ 푸른 릉(陵)의 흰 나비야 이별을 한탄 말아라/ 분명 오월이면 우리 다시 만날 것이니.' 국내 현존하는 안평대군(1418~1453)의 유일한 작품 '소원화개첩'(국보 제238호)이 자취를 감춘 지 10년째다.

경찰과 문화재청은 6일 '소원화개첩'을 비롯, 도난 당한 중요 문화재를 인터폴을 통해 국제 수배했다.

'소원화개첩'은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정권 다툼에 말려들어 35세 젊은 나이에 둘째 형 수양대군(세조)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쓴 작품이다. 그는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능해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죽은 뒤 모두 불태워져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일본에 있는 '몽유도원도'의 발문과 '소원화개첩'뿐이다. 비단에 쓴 이 작품은 가로 26.5㎝ 세로 16.5㎝로 A4용지보다 작지만 행서체를 대표하는 작품이면서 웅장하고 활달한 안평대군의 기품이 잘 나타나 있어 1987년 국보로 지정됐다.

'소원화개첩'이 도난 당한 것은 2001년 1월 초. 소장자였던 서정철(80)씨가 일산의 아들 집에 다녀오느라 서울 동대문구의 집을 사흘간 비운 사이 도둑을 맞았다. 서씨는 "값을 매길 수도 없는 작품"이라며 "도둑맞고 며칠간 잠을 못 잤다. 자꾸 생각이 나서 한두 달 후 이사까지 갔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서울 인사동에서 30년간 화랑을 운영했던 그는 "선친들이 기거하시던 안동 고택에서 찾은 소중한 작품인데 잃어버려 조상님 뵐 낯이 없다"며 되찾길 체념한 듯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인터폴 국제 수배 소식을 듣고는 "꼭 찾을 수 있게 좀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도난 당시 문화재청도 '소원화개첩'을 찾는데 혈안이었다. 전국 고미술품을 거래하는 곳마다 수배령을 내렸다. 몇 달 후 '소원화개첩'과 함께 도둑맞은 고문서를 팔려는 남성 2명이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고미술품 상가에 나타나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한 언론이 '소원화개첩' 도난 사실을 보도하면서 용의자들은 종적을 감췄다. 강신태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도난사건 발생 후 1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면서 "지금도 '소원화개첩' 이야기를 들으면 전국 어디라도 달려간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소원화개첩'을 비롯해 강화 백련사의 '철조아미타불좌상', 순천 송광사 국사전의 '조사 진영' 등 보물 9점과 '한음 이덕형 영정', 고창 선운사 '석씨원류목판' 등 지방문화재 19점 등 중요문화재 총 29점의 사진과 내력을 인터폴 홈페이지(www.interpol.int)에 올렸다.

경찰 관계자는 "도난 문화재들이 다른 나라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어 국제 수배했다"며 "188개 인터폴 회원국과 공조수사를 통해 '유다의 키스'처럼 회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8년 우크라이나 서유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도둑맞은 카라바조의 그림 '유다의 키스'는 인터폴에 수배된 후 지난 7월 독일의 밀거래 현장에서 발견돼 제자리를 찾았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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