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포 30일 만에 오징어잡이 어선 대승호의 송환을 통보한 6일 북한의 발표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북측에 의한 우리 어선 나포와 송환 사례는 과거에도 수 차례 있었지만 천안함 사태로 남북관계가 최악의 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조건 없는 송환’ 방침을 밝힌 북측 결정에는 노림수가 숨어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대승호 사건’은 자칫 남북관계에 대형 악재가 될 수도 있었다. 대승호가 나포된 8월 초는 천안함 사태로 인한 남북간 군사적 긴장도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 해군은 북한 잠수함 공격에 대비한 서해 연합 훈련을 실시 중이었고, 이 때문에 북측이 대승호 문제를 장기적으로 끌고 가며 대남 압박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북측은 표면적으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를 대승호 송환 이유로 내세웠다. 선원들이 불법 월경에 대해 뉘우치고 재발 방지 약속을 한 만큼 ‘선심’을 베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우선 북측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대승호 선박과 선원의 송환을 촉구하는 정부의 잇단 요구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건 발생 11일 만인 지난달 19일 “계속 조사하고 있다”는 짧은 입장만 내놨을 뿐 나포 경위와 신변 안전 문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북측이 최근 대북 정책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류 변화, 특히 유화적인 대북 메시지에 화답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과 31일 대한적십자사 명의로 수해 피해를 입은 북한에 100억원 규모의 지원 물품을 제공하겠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3일 “수해 지원을 위한 대북 쌀 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측의 수해 지원 의사를 받아들이기 위해 ‘성의’ 표시로 대승호 선원들을 풀어 줬다는 얘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코 앞으로 다가온 노동당 3차 대표자회 등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변수들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통해 북핵 6자회담 복귀 의지를 피력했고, 후계 문제를 논의할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있어 남북관계의 안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일련의 흐름을 종합해 보면 북측의 대승호 송환 결정은 남북간 대화 재개를 위한 긍정적 신호임은 분명해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승호 송환은 입장과 행동으로 주고 받았던 남북 당국간 간접적 의사소통의 산물”이라며 “‘남측과 얘기를 해보겠다’는 북측의 의지가 확인된 만큼 준정부 기구의 성격을 띤 남북적십자회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섣불리 남북관계의 해빙을 점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북소식통은 “천안함 사태를 덮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만 요구하는 북한의 태도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정 현안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북한의 선제적인 태도 변화가 있어야 본격적인 천안함 출구전략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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