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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삶의 질 바꾼다/ (상) 노령인을 위한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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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삶의 질 바꾼다/ (상) 노령인을 위한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gy)

입력
2010.09.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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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력보조 로봇·면역질환 치료법… "편안한 노후 소망이 현실로"

상반기 영화계를 뒤흔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중 마지막 전투장면. 등장인물들이 몸에 기계장치 같은 걸 착용하고 싸운다. '입는 로봇' 또는 '외골격 로봇'이라고 불리는 장치다. 몸과 기계가 함께 움직이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바로 이거다. 고령화 시대에 주목할만한 공학기술. 근력을 강화시켜주니 팔다리 힘이 없는 노인에게 안성맞춤이다. 관건은 얼마나 가볍게, 편하게, 싸게 만드느냐다.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이 같은 기술들을 통틀어 '제론테크놀로지(Gerontechnoloy·GT)'라고 부른다. 늙었다는 뜻의 영어 형용사 '제론틱(gerontic)'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IT(정보기술)와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 ET(환경기술)에 이어 국내에서도 GT 분야에 관한 연구에 막이 올랐다.

고령자 맞춤형 활동보조기기

우리나라 75세 이상 후기고령자는 2명당 1명꼴로 활동에 제한을 받는 걸 경험한다. 65∼74세 노인 중에선 약 30%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가 들수록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통제능력이 약해지고, 신체 기관이나 조직 기능이 떨어지며, 생활에 적응하는데 정신적인 어려움마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능이 저하되는 대표적인 신체부위가 근육이다. 힘이 약해지고 심하면 갑자기 뒤틀리기도 한다.

그런데 근력은 떨어져도 운동을 담당하는 뇌 기능은 크게 나빠지지 않는다. 몸은 말을 안 들어도 운동을 지시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덜 늙는다는 소리다. 결국 노인의 근력을 물리적으로 보조하는 장비를 개발하면 삶의 질 향상은 물론 노동인구 증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창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팀은 다리 근력을 증폭시키는 로봇슈트를 최근 개발했다. 사람이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든 일을 돕는 산업용 장비로 쓰기 위해서다. 한 교수팀은 이를 고령자용 활동보조기기로 새롭게 만들어볼 요량이다. 노인이 착용해도 무리가 가지 않으려면 입기 편하고 가벼워야 하는 건 물론, 장치와 사람 사이의 동작 오차를 최소화해야 한다. 내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관절마다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 그에 맞게 장치를 부분별로 조절할 수 있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김정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손과 팔의 보조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손가락 근력을 보강하는 장갑처럼 생긴 장치다. 젓가락을 툭툭 떨어뜨리는 노인들이 착용하면 식사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손목 관절을 잡아주는 장치를 개발해 착용하면 손이 떨리는 수전증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현재로선 운동감각을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 기준이 없다는 게 가장 난점"이라며 "근육에 흐르는 전기신호(근전도)뿐 아니라 근육의 진동을 재서 특정 동작에 어느 정도 근력이 필요한지 계산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노인 면역력 저하 막는 연구 초점

한국인 평균수명은 2000년 75.9세에서 2050년 83세로 늘어날 전망이다. 유엔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7% 이상∼14% 미만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20% 미만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2000년에 이미 노인 인구가 10%를 넘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령사회에 진입하는데 걸리는 햇수가 프랑스 115년(고령화사회 진입연도 1865년), 스웨덴 85년(1890년), 일본 25년(1970년)에 비해 한국은 22년에 불과하다. 이런 추세로는 2050년이면 노인이 전체 인구의 40%를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노인 건강이 전 인구의 건강수준에 크게 반영된다는 얘기다.

노인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은 면역기능 저하다. 젊을 땐 면역세포가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양과 속도가 점점 준다. 인플루엔자 같은 감염질환과 류머티스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발병이 그래서 늘어난다. 노인층에서 암환자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60세 이상에서 발생하는 암이 전체의 70%다.

하지만 지금의 면역기능 관련 치료제는 대부분 비싸고 주사를 자주 맞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자가면역관절염 치료제는 전량 수입된다. 한 달 약값만 150만원이 넘는다. 이에 김호연 가톨릭대 의대 교수팀은 노인성 암과 면역질환의 특이적인 질병유발인자를 찾아내 새로운 진단과 치료법을 개발하려고 한다.

강창율 서울대 약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단은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로 환경을 주목한다. 보통 시골보다 도시에서 노화가 빠르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강 교수는 "전국 장수인과 장수마을 데이터를 활용해 노화로 인한 면역력 약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라며 "환경과 노화 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국내 첫 시도"라고 말했다.

심근경색 생존율 높이는 전략

노인들에게 자주 생기는 병으로 심근경색을 빼놓을 수 없다. 일단 심근경색이 생기면 40% 정도는 응급실에 가기도 전에 급사하며, 10% 정도는 병원에서 막힌 혈관을 뚫어줘도 이미 심장근육이 다 파괴된 상태다. 결국 심근경색 환자의 생존을 위해선 신속한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치료가 늦을수록 합병증이 심해 삶의 질은 그만큼 나빠진다.

현재 환자가 내원했을 때 의사가 문진하고 피 뽑고 심근경색인지 아닌지를 최종 판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50분. 심근경색 환자는 90분 이내에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해야 한다는 병원의 기준에 못 미치진 않지만 이 시간을 줄일수록 생존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고영엽 조선대 의대 교수팀은 공학자들과 함께 심근경색 가능성이 있는 노인이 입원하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다가 증상이 생겼을 때 빠른 시간 안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 장치의 핵심은 일정 시간 간격으로 혈액을 계속 추출해도 며칠 동안 굳지 않게 하는 미세한 바늘. 고 교수는 "이 바늘이 연결된 장치를 환자가 차고 있는 동안 혈액검사 데이터가 환자 위치와 함께 응급의료센터로 전송된다"며 "데이터가 위험 수준에 이르면 곧바로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어 시술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김호연 가톨릭대 교수

"새로운 시도죠. 이른바 '나노의학'입니다. 젊은이와 노인의 면역질환은 양상이 달라요. 그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맞는 치료 방향을 정할 수 있죠. 현재 의학 수준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김호연(63ㆍ사진) 가톨릭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면역학자다. 이번에 김 교수가 구성한 연구단에는 분자생물학자와 독성학자 병리학자 생물정보학자 등이 합류했다. 면역기능 연구를 더 이상 면역학에만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김 교수의 확신 때문이다.

"나이 들어 면역기능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유전자와 단백질이 변형되고 각 세포의 기능도 바뀌죠. 면역 노화 메커니즘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단 얘기에요. 예를 들어 몸의 특정 부위에서 면역기능 이상이 나타났다면 유전자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단백질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고, 세포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거죠. 원인을 알아내려면 결국 유전자 수준까지 들어가야 해요."

유전자와 단백질의 크기는 수∼수십 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정도다. 나노미터 수준의 미시세계까지 들여다봐야 구체적인 면역 노화 메커니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임상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나 진단결과만 갖고는 근본적인 치료법을 얻기 어렵다.

"암도 마찬가지에요. 일반적으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암에 잘 걸리는데, 암세포와 면역세포가 서로 타협해 공존하려는 경우도 생기죠."

이런 현상은 기존 방식의 의학 연구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이에 김 교수는 나노의학이라는 독특한 연구 방식을 제안했다. 이미 유전자와 단백질 수준까지 다루고 있는 분자생물학이나 독성학 병리학 생물정보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면역체계를 연구하겠다는 포부다.

"노화나 면역을 이렇게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연구는 많지 않아요. 외국에 비해 우리가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봅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삶의 질 향상" EU·美·日도 파격적 연구지원

최근 주요 선진국들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과 정책지원을 잇따라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이를 선도하는 건 유럽. 유럽연합(EU)은 2001년 '유럽의 경쟁력 강화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가능 발전 전략'을 수립해 경제 사회 환경 각 분야에 적용해왔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지는 제7차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2007년 연방교육연구부(BMBF)가 나서서 '혁신적 재활 및 장애인 치료사업'을 마련해 장애인의 신체와 감각기관 회복을 위한 기술 개발에 3년 동안 2,000만유로를 지원하는 계획을 세웠다. 영국은 사회적기업과 자원봉사단체, 자선단체 등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6년 범부처 정부기구인 '제3섹터실(OTS)'을 설치했다. 경제성장으로 발생하는 잉여수익을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문제 해결을 위해 재투자하는 게 기본 목적이다.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속도가 우리 못지 않게 빠른 일본도 유럽에 질세라 2003년부터 안전ㆍ안심사회 구축을 중점목표로 건강복지기기와 서비스 기술개발을 추진해왔다. 2007년 세운 일본의 장기전략지침인 '이노베이션 25'의 5대 전략 가운데 3가지가 ▦평생 건강한 사회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다양한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사회로 삶의 질 향상과 관련돼 있다.

미국 정부는 2006년 과학기술정책실(OSTP)을 통해 고령인의 건강 및 독립성 기술개발 전략으로 '노인 기술 이니셔티브(ETI)를 설정했고, 같은 해 '삶의 질 기술 센터'를 설립했다. 미국과학재단은 이곳에 5년간 1,5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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