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구려 이미지는 옛말… 고가 고품질 중국産 습격 '초읽기'
“중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이다. 10년간 중국에서 현지화된 독일 최고의 기술력과 철저한 품질관리, 수천 번의 시험주행을 거쳐 BMW로고를 붙인‘메이드 인 차이나’제품은 중국시장을 넘어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조만간 수출 될 것이다. 한국도 그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중국 BMW그룹 고위관계자)
앞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될 경우, 한국 소비시장을 강타할 가장 강력한 지각변동 요인은 싸구려 중국제품이 아니다. 오히려 초점은 중국을‘세계의 공장’으로 이끈 다국적 기업들의 기술력이 함축된 중국산‘메이드 위드 월드’ 제품들의 공세에 모아진다. 중국의 일반 대중차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상하이폴크스바겐과 상하이GM에서부터 프리미엄급 화천BMW(華晨寶馬)와 이치AUDI(一汽奧適),베이징벤츠(北京奔馳)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기술력을 탄탄하게 현지화한 다국적브랜드 자동차들이 앞다퉈 한국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 등 국내차와의 치열한 판매대전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세계최고의 가구생활용품 전문매장인 스웨덴의 이케아(IKEA)도 아ㆍ태지역 본부가 위치한 중국에서 다져진 광범위한 중국산 제품의 물류소싱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톈진(天津) 에어버스항공기 제작공장이 위치한 빈하이(瀕海) 항공산업기지에서 만들어진‘메이드 인 차이나’에어버스 항공기들이 15~20년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한중FTA의 파급효과는 실생활과 밀접한 중국산 다국적브랜드 제품의 수입을 급증케 해 우리 소비시장에 격변을 몰고 올 수 있다.
지난달 20일 오전 11시, 중국 동북3성 최대소비도시인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공항 입국장. 벽면 한복판에는 독일 BMW로고가 달린 10m 길이의 은색 자동차 보닛이 걸려 있었다. 이를 보는 순간 선양이 중국에서 BMW를 대표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 BMW와‘세계의 공장’ 중국,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색적 조합이 선양 등 중국시장 전역에서 이미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BMW가 중국의 중화(中華)자동차와 합작으로 화천바우마를 설립하고 선양에서 BMW 3ㆍ5시리즈 모델을 생산한지 올해로 7년이 됐다. 이어 중국시장의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자 6월초 선양 경제개발구에 제2공장 착공식을 가졌다. 2012년 완공될 제2공장에는 새로운 모델 생산라인과 엔진제작공장 등이 들어선다. 기자가 방문한 선양 다둥(大東)구의 제1공장에서는 하루 150대를 생산하는 빠듯한 생산스케줄에 따라 8대의 자동화된 조립 로봇들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만은 영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직수입하고 있지만 2만여 개에 달하는 주요 부품 상당부분이 이미 현지화된 기술로 제작된다. 또 독일에서 공수한‘7게이트 품질관리전자시스템’으로 철저한 품질관리와 테스트 작업도 이뤄진다. 리잉쥔(李英君)BMW그룹중국본부 마케팅부장은 “선양에서 만들어진 BMW 3ㆍ5시리즈의 품질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됐다”며 “이곳 제품과 독일산 수입 동일 모델은 같은 가격으로 판매된다”고 말했다. 리부장은 또 “올 6월에 열린 베이징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뉴5시리즈 롱 휠베이스버전은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제품으로 아시아인들의 취향과 기호를 특별히 살린 모델”이라며 “까다로운 한국 부유층 소비자들을 사로잡기에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지역 최대규모(11만6,400㎡)의 이케아 매장이 위치한 선양시 티예시(鐵西)구의 이케아(이자자쥐ㆍ宜家家居)선양점은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올 5월말에 문을 연 이곳은 소비열기가 높은 중국 동북지역을 노린 이케아의 야심 찬 시장개척 전진기지다. 이케아가 중국에 처음 진출한 1997년 상품들은 모두 유럽연합(EU)에서 만들어졌었지만 13년간 중국에 8개의 점포가 생기면서 간단한 생필품에서부터 주방용품과 고급가구에 이르기까지 대다수가 중국산 제품으로 바뀌었다. 쉬리더(許麗德)이케아중국본부 마케팅팀장은“이케아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류제품 가운데 소싱이 중국과 인도, 동남아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 전체의 60%를 넘는다”며 “한중FTA가 이뤄질 경우 물류조달과 수입관세 등을 고려할 때 아ㆍ태본부가 있는 중국본부에서 직접 한국에 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이케아는 이미 내부적으로 한국시장 진출을 결정한 상태”라며 “현재 그 시점 결정과 적합한 사업파트너 물색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선양ㆍ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 인터뷰/ 아로이스 키르마이어 독일 BMW 아태본부 이사
“중국 화천BMW(華晨寶馬)의 목표는 우선 중국 프리미엄 자동차시장에서 넘버원이 되는 것이다. 세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성, 아시아인들의 취향에 맞춘 독특한 디자인 등 3박자를 갖춘 ‘메이드 인 차이나’BMW제품은 중국인은 한국인들의 기호를 사로잡을 것이다.”
독일 BMW그룹의 아로이스 키르마이어(사진)아시아ㆍ태평양본부 이사는 3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될 것으로 보이는 2015년께에는 이미 중국 선양(瀋陽)제2공장이 가동돼 엔진 역시 중국에서 생산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에서 만들어진 BMW완성차의 한국 진출은 결국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아직은 ‘메이드 인 차이나’BMW제품에 대한 인지도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지만 이미 중국은 세계의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부상했다”며 “한중FTA가 체결될 시점에는 상황도 많이 바뀌어 이곳에서 생산된 X-1 등 새로운 모델의 BMW제품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시장 진출기회를 엿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그 때가서 한국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지가 너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 전문가 제언/ 원산지기준 강화 등 우회수출 대비 필요
중국산의 한국 시장 진출이 노동집약적 제품을 넘어서 하이테크 제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중FTA가 체결돼 양국간 무관세 교역이 실현될 경우 중국 내 한국계 기업과 중국계 기업, 중국내 다국적기업들의 전방위적 대 한국 수출공세가 이루어질 것이다. 중국계 기업 제품은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반면, 다국적 기업제품은 기술과 품질 면에서도 우수하다. 전기전자와 철강금속, 석유화학 업종 등 양국의 관세율이 낮은 업종에서는 중국의 대 한국 수출은 소폭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자동차, 섬유, 의류 업종 등 고관세가 유지되고 있는 업종에서 역습이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중국내 유럽ㆍ미국ㆍ일본계 자동차 업체들의 한국 시장에 대한 공세가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한중FTA 추진과정에서 농산물 이외에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산 다국적브랜드 제품의 공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중 FTA 추진 시 세이프가드 도입을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급격한 수입증대에 따른 국내산업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 제3국 제품들이 우회 수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중 FTA체결시 원산지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이러한 제품의 급격한 수입증가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내 다국적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경우 핵심부품과 소재를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중국내 외자기업이 주로 수출하고 있는 자동차 및 하이테크 제품에 대해서는 원산지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