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운 사람은 워털루 전투의 영국 군인들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다." 19세기 중반의 영국 의사 제임스 심슨의 말이다. 1867년 자료를 보면 유럽 주요 도시 병원들의 수술 사망률은 파리 60%, 취리히 46%, 글래스고 34%였다. 전쟁터의 상황은 더 참혹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1870~71년) 때 프랑스 육군병원에서 절단 수술을 받은 군인 1만3,173명 중 1만6명이 숨졌다. 그런데 상식에 반하는 통계가 눈에 띈다. 당시 영국의 병상 300개 이상 대형병원에서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의 41%가 사망한 반면, 소규모 의원이나 가정집 등 병원 밖에서 시행된 수술의 사망률은 11%에 불과했다.
■ 사망 원인은 상처 감염에 의한 폐렴과 패혈증이었다. 의사들은 감염의 원인을 공기 중의 산소로 추정했다. 산소가 수술 상처에 들어가 조직을 파괴하고 고름을 만든다고 믿었다. 상처를 산소로부터 차단할 방법이 없어 감염도 막을 수 없었다. 감염 경로에 무지했던 의사들은 피와 오물이 말라붙은 검정색의 더러운 프록코트를 입고 수술했고, 오염된 붕대로 상처를 감쌌다. 코흐와 파스퇴르에 의해 세균과 미생물이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져 자신의 불결한 손과 수술기구가 높은 사망 원인이었음을 깨달은 의사들은 경악했다.
■ 상처 소독법과 감염 예방 차원에서 수술기구 등을 소독하는 무균법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사망률이 크게 떨어졌다. 1928년 세균학자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해 세균과 미생물을 죽이거나 성장을 억제하는 항생제 개발의 길을 열었다. 문제는 항생제가 몸에 유익한 미생물까지 억제해 인체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몸의 99%는 세균이다. 미생물은 면역체계 유지에 꼭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항생제의 과도한 사용은 내성을 갖는 미생물(내성균)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어떤 항생제를 써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했다.
■ 일본 도쿄의 유명 병원에 입원 중이던 환자 46명이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돼 9명이 숨졌다. 상처나 의료행위에 따른 집단 감염으로 추정된다. 병원 측은 4월 감염 사실을 확인하고도 신뢰 추락을 우려해 은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병원들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의사들의 가운과 넥타이에서 치명적인 슈퍼박테리아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미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항생제 오ㆍ남용 국가다. 항생제 오ㆍ남용을 줄이고 병원 위생규칙을 더 강화하지 않으면 전염병 재앙이 올 수도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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