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침 튀기는 비트박스 아니면 신시사이저 합성음만 듣고 자랐을 나이의 소년들이 포크 앨범을 냈을 때, 반가움보다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이것도 상술이 아닐까. 그런데 소년들의 음악은 무구했다. 녀석들의 기타 울림통 속엔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음악을 듣던 시절의 아릿한 감성이 담겨 있었다. 박경환과 유상봉, 당시 스무 살도 안 됐던 대학생 둘로 이뤄진 밴드의 이름은 재주소년(才州少年). 서울에서 자라 제주도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지난달 18일, 재주소년이 4년 만의 새 앨범 ‘유년에게’를 발표했다.
“그 동안 우리가 풀어 놓은 얘기들이 다 어린 시절을 향해 있는 것 같아요. 최근까지 작곡한 곡들도 대개 그렇고요. 이번 앨범은 그런 감성의 노래를 집대성했다고 할까요, 어쩌면 우리의 유년시절을 향한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네요.”
‘교과서를 보는 척’하며 ‘이분단 셋째 줄에 앉은 아이’를 바라보던(2집 ‘이분단 셋째줄’) 소년들은 어느덧 향토예비군 2년차가 됐다. ‘영원한 동화의 나라’를 꿈꾸기엔(3집 ‘팅커벨’) 조금 머쓱한 나이다. 그러나 이들이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은 여전히 카세트 테이프에 노래를 담아 마음을 전하던 떨림과 수학여행 마지막 날 아침의 아쉬움을 기대한다. 기억의 퇴적층 깊숙한 곳에 있는 그리움을 적셔 달라는 결코 만만찮은 요구.
“피곤하거나 권태롭진 않아요. 그렇다면 포크를 못 하겠죠. 하지만 작곡할 때는 가끔 소스가 바닥난다는 느낌이 들어요. 우리 앨범을 처음부터 다 들어 본 관객들을 만날 때도 그렇고요. 그럴 땐 잠시 쉬었다 하죠. 서정성을 유지하는 건, 권투선수가 체중을 유지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인 듯해요. 기타를 치다 보면 문득 찾아오는 새로운 느낌이 있는데, 그런 게 포크의 감수성인 것 같아요.”
듀스와 서태지와 아이들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어린 시절, 재주소년은 통기타를 배우면서 포크와 접했다. 같은 교재에 실린 연습곡들이 죄 포크였기 때문. 그렇게 산울림과 들국화와 해바라기와 김현식을 듣고 따라 연주했다. 레게와 힙합과 계통을 따질 수 없는 현란한 댄스 음악의 범람 속에 포크 음악을 계속한 이유를 묻자, 둘은 “스타크래프트보다도 통기타가 더 재미 있었다”고 대답했다.
제주도에서 곡을 쓰고 서울에서 녹음했던 이전 작업과 달리, 이번 앨범은 전곡을 제주도에서 만들고 녹음했다. 한라산 중턱에 있는 대학의 남는 방이 스튜디오였다. 사람의 흔적이 드문, 별빛과 노루만 있는 공간에서 채취한 농밀한 어쿠스틱 사운드가 도화지 위에 파란색 크레파스로 그려 놓은 크로키 같다. 일상의 공간을 벗어난 공기와 하늘을 만났을 때 같은 상쾌함을 주는 앨범. 반가움을 숨기고 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답변을 주로 하던 박경환 대신 무뚝뚝히 앉아 있던 유상봉이 불쑥 대답했다.
“걸그룹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음… 좋죠, 뭐. 우리 같은 음악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죠. 어쨌든 걸그룹은 예쁜 것 같아요. 결론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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