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명제는 좌파들은 종교와 윤리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인 테리 이글턴(67) 영국 랭카스터대 교수는 그러나 지난해 출간한 에서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허친스 등 종교비판자들을 비판함으로써 이런 고정관념이 오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글턴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고 고려대 영미문화연구소가 주관하는 ‘해외석학초청강좌’ 참석차 방한했다. 그는 6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본주의 사회 모순의 해결책으로서 좌파적 시각에서의 종교와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글턴 교수는 “서구에서 좌파는 수십년간 정치ㆍ경제적인 힘을 잃어버리면서 자신들이 믿는 근본적 가치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됐다”며 “좌파 지식인들은 현실 문제에 직면해서 새로운 시각과 지적 자원이 필요했다. 신학의 오랜 역사와 에너지가 이들에게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뿐 아니라 자크 데리다(1930~2004)나 슬라보예 지젝(61) 같은 좌파 지식인들이 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는 것.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신념(faith)의 문제”라고 꿰뚫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은 “어떤 믿음도 필요없고 돈만 벌면 된다”는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종교나 혹은 다른 형이상학적 가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물질주의적인 사회이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는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미국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놀라지만 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변질된 근본주의에 빠진 시민이 미국에 많다”며 “이는 모든 서구사회의 문제로 서구는 믿음을 최대 무기로 하는 이슬람에 대처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또 “세계는 너무나 광신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과 믿음이 몹시 부족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양분돼 있다”며 “북한과 남한이 좋은 예”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일랜드계 노동자 집안에서 가톨릭 신자로 자란 이글턴 교수는 대학시절 가톨릭 신앙과 좌파 정치의 결합을 꾀하는 잡지를 내기도 했을 정도로 기독교에 관한 교양이 풍부하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복음에서 출발한 기독교가 기존 질서에 대한 옹호 역할을 하는 종교로 전락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그가 기독교에서 주목하는 것은 정치범으로 몰려 사형당한 예수가 보여준 인간해방을 위한 통찰이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좌파 지식인들과는 친연성이 없을 것 같은 ‘사랑’을 화두로 제시했다. 그는“넓은 의미에서 사랑은 개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개념”이라며 “사랑이라고 하면 개인적인 것, 낭만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랑을 정치적 의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초 출간한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서 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이후 문화, 종교, 윤리 등의 문제로 학문적 관심사를 넓혀왔다. 그는 “그 책이 각광받았던 80년대와 달리 요즘은 문학이론의 영향력이 약해졌지만 근본적인 의미에서 현실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반성하는 ‘문학비평(critique)’의 의미는 여전하다”며 “일부러 예전으로 돌아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새로운 문학이론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글턴 교수는 6일부터 ‘신념과 근본주의’ ‘문학의 내면’ ‘미적인 것의 윤리적 가치’등을 주제로 고려대, 전남대, 영남대 등에서 강연한 뒤 11일 한국을 떠난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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