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월드 인사이드/ 호킹 박사 발언으로 불붙은 '무신론' 논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월드 인사이드/ 호킹 박사 발언으로 불붙은 '무신론' 논쟁

입력
2010.09.06 09:44
0 0

■ 호킹 박사 "우주는 神의 창조물 아니다"

“청사진에 설계도를 그려 넣고 우주를 작동하게 하는 데 반드시 신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9일 출간될 새책 에서 신의 존재 없이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이 불붙었다. 호킹은 “빅뱅(우주를 창조한 대폭발)이 신의 개입으로 이뤄졌다기 보다는 중력의 법칙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됐다”고 설명했다.

호킹은 과거 베스트셀러 에서 “만약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하게 된다면...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기 때문에 신작에서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번 저서는 그를 포함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꿈꿔 온 ‘대통일이론(단일 원리로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수립이 좀더 다가왔다는 자신감의 선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세기 초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신이라는 가설은 필요치 않다’고 선언했다. 상대성이론을 창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1954년 ‘내게 신이란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들은 만물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안다면 그 이치를 풀 수 있는 법칙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런 연유로 우주의 원리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우주와 관련해 가장 불가해한 부분은 우주가 완전히 이해 가능하게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라는 명언으로 요약했다. 호킹의 주장 역시 이런 과학적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새 책에서 호킹이 ‘신이 없다’며 내세운 근거는 태양계가 우주의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2년 태양계와 흡사한 행성시스템들이 발견되면서 지구가 인간을 위해 설계됐다는 기독교식 천지창조론의 근거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만일 신의 의도대로 우주가 창조됐다면 인간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한 태양계와 유사한 태양계가 수백개나 우주에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빅뱅이 중력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 결과이듯 인간과 지구는 신이 창조한 유일하고 독특한 세계가 아니라 중력 등 몇 가지 물리적 법칙이 미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혼돈으로부터 우주가 저절로 만들어 질 수 없다는 뉴턴의 믿음도 무너졌다고 호킹은 말한다.

호킹에 따르면 수많은 우주들은 저마다 주어진 물리적 법칙의 균형 속에서 무한하게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이렇듯 다양한 조건 중 극히 예외적인 환경 속에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환경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창조주’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오래 전 에스키모들이 일식과 월식은 커다란 늑대가 해와 달을 물어뜯어 발생한다고 믿었듯이.

채지은기자 cje@hk.co.kr

■ 종교지도자들 “물리학은 ‘왜’라는 질문에 답 못해”

무신론을 주장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물리학적 논거들에 대해 종교 지도자들은 호킹의 방법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무신론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빅뱅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건 “왜 물질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 성공회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는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물리학 자체만으로는 ‘왜 무(無)가 아닌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결코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우주 내에서 한가지 현상이 다른 현상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종교는 세세한 물리적 이론과 일일이 다투는 성격이 아니라는 뜻. 즉,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고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초끈이론이나 M이론 등을 내놓고 이런 이론 전개를 통해 무신론의 근거를 찾아가고 있는 호킹 등 일부 물리학자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은 모든 만물이 궁극적으로 의존하는 ‘지성을 갖춘, 살아있는 행위자’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유대교 최고 지도자인 랍비 조다단 헨리 색스 경도 호킹의 논리 전개에 “기초적인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과 종교는 다르다”며 “과학은 설명에 대한 것이지만, 종교는 해석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은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게 됐는지에는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다”고 덧붙였다. 색스 경은 “종교와 과학간의 상호 적대는 우리 시대의 저주 중에 하나”라며 “똑같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학보다 더 큰 지혜도 존재한다”며 “과학은 우리가 왜 존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로 가장한 과학은, 과학으로 가장한 종교만큼 흉하다”고 비판했다.

영국 무슬림위원회 의장인 이맘 이브라힘 모그라도 “우리가 우주와 지금까지 창조된 것들을 바라볼 때,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 누군가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 누군가가 전능한 권능자”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입장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이유 없이, 그냥’존재하는 물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을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과 기본적이 인식 차이가 있다. 물리학이 궁극적으로 “왜”라는 데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근간을 허물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英천문학자 그리빈 "둘다 맞다…과학과 종교의 논쟁 그만해야"

‘유신론 대 무신론’ 대립은 과학과 종교간 수백년 동안 이어져 온 해묵은 논쟁이다. 어느 하나 딱 부러진 결론을 낸 적이 없는 요지부동의 난제다. 이 와중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우주는 신이 만들지 않았다”고 무신론적 입장을 강조했으니 케케묵은 논쟁의 불씨를 되살린 셈이다.

영국 출신 천문학자 존 그리빈은 호킹 박사로부터 촉발된 논쟁의 확산에 선을 그어 이목을 끌었다. 그는 3일 영국 방송 채널4에 호킹 박사와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갈등을 “둘 다 맞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물리학자들은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이라는 M이론을 통해 우주 생성을 설명한다. 호킹 박사는 M이론을 다중 우주 속에서 최소한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행성이 적어도 하나는 존재하며 그것은 곧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가설의 핵심 논거로 사용했다. 반면 그렇다면 M이론이 새로운 우주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새로운 우주를 만들거나 연결하는 것으로 알려진 블랙홀을 통해 가능하다 할지라도 생성한 또 다른 우주가 전적으로 현재의 중력과 같은 가치들을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바로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 그리빈의 주장이다. 둘 다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그리빈은 “양쪽 모두 내 의견에 기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현대 과학계에서는 무신론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었다. 특히 1977년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를 출간하면서 과학계와 종교계는 큰 갈등을 빚었다. 도킨스는 2006년 을 통해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종교가 인간의 진보를 가로막는다는 과학, 인간 우위론을 펼쳤다. 이에 앨리스터 맥그래스 전 옥스퍼드대 위클리프홀 교수가 과 등을 잇따라 발간하며 그를 비판하면서 과학적 무신론자에 대한 대응 이론을 세우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고 있어 대립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중립적 결론이 주류였다. 진화론자이자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대표적이다. 굴드는 특히 ‘중첩되지 않는 권위’라는 개념을 수립, 과학과 종교가 서로 다른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별개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봤다.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였던 폴 디랙의 전기를 집필한 그러햄 파멜로도 3일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글에서 “과학과 종교간 논쟁은 가장 눈길을 끄는 것임은 분명하다”면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6일 신앙심이 있는 연인이 부정을 덜 저지른다는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미 플로리다대학 심리학과 연구팀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신의 유무와 상관 없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외도를 방지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신의 유무를 떠나 삶의 안내서로서 종교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