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혜 옥토·첨단시스템… 中 고급농산물 세계의 식탁 넘봐
지난달 24일 중국의 동북쪽으로 밤새도록 차를 몰아 푸른 논밭들이 드넓게 펼쳐진 산장(三江)평원과 만났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尔濱)을 출발, 6시간 만인 새벽 6시30분 헤이룽ㆍ우수리(烏蘇里)ㆍ쑹화(松花)강이 한데 모여 만든 옥토인 산장평원의 한 복판에 도착했다. 이 곳에는 중국 최대 곡물기업인 베이다황(北大黃) 그룹이 자랑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우이(友誼) 농장이 자리잡고 있다. 바둑판 모양으로 잘 정돈된 논ㆍ옥수수ㆍ대두 밭은 강한 겨울바람도 막아주는 방풍림들로 촘촘히 둘러싸여 한 눈에도 철저히 관리된다는 인상을 준다. 바로 이곳이 중국 13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려는 중국 식량생산의 대표적 전초기지이다.
우이 농장은 대략 동서 56km, 남북 44km로 총면적이 1,888 ㎢ 규모에 달해 홍콩과 싱가포르를 합친 크기다. 이 곳의 농업인구도 13만여명에 이른다. 1954년 구소련의 지원으로 건설된 우이농장은 중국 1차 5개년계획중 156개 중점사업의 하나로 신중국 창건이래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중국인들의 열망이 깃들어 있다. 특히 지난 30년간의 개혁개방 물결 속에서 이 농장은 첨단 과학을 활용한 선진화된 농업시스템과 품종개량, 엄격한 생산과정 통제로 쌀과 옥수수, 대두 등 고품질의 5대 녹색식량을 생산해왔다. 세계 3대 옥토로 꼽히는 이곳은 유기농 식품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겨울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고 지표가 2m이상 꽁꽁 얼어 이듬해 병충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농약이 필요 없다는 얘기다. 100% 기계화에 의한 파종에서부터 위성을 통한 농기구 운용, 가뭄에 대비한 인공강우 설비, 비행기로 뿌려지는 비료, 철저히 과학적인 수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표준화된 절차에 맞춰져 있다. 중국의 농업기술이 제3세계 수준이라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됐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농산물들은 친환경적 조건과 철저한 관리를 통해 고급화를 추구한다. 지금은 90% 이상을 국내에서 소비하지만 장기적으로 유럽 등 검역기준이 엄격한 나라로의 진출을 추진 중이다. 베이다황그룹은 안내책자에 한국을 포함, 세계 곳곳으로 베이다황 농산물이 뻗어가는 그림을 실어 놓았다. 한국에 수입되는 쌀의 경우 최소시장접근물량(MMA) 제한으로 중국양유그룹(COFCO)과 지린(吉林)성 양유그룹 등이 당장 수출쿼터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베이다황도 이 쿼터를 따내기 위해 중앙정부측에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왕용리(王勇利) 헤이룽장 베이다황농업투자유한공사 정보전략부주임은"유기농쌀을 포함한 다양한 베이다황 농산물이 한국에 수출될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고 장기적으로 한국과의 농산물 교역이 증가할 것에 대비, 다양한 한국진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동북3성에서 생산되는 중ㆍ단립종 쌀은 한국으로 수입되는 MMA 전체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며 "헤이룽장 특유의 친환경농업을 활용한 고품질의 유기농쌀은 캘리포니아종이나 자포니카 보다 더 기름지고 가격도 5~7배 저렴해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베이다황그룹은 우이농장 외에 90개의 또 다른 농장을 가지고 있다. 베이다황이 생산하는 쌀만해도 한국의 전체 벼 농사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중국 동북3성 가운데 헤이룽장성에는 베이다황 외에도 하얼빈ㆍ 자무스(佳木斯)ㆍ 치지하얼(濟濟哈爾)시 등 5개 지역에 재배면적 10만ha 이상의 수많은 농장들이 퍼져 있다. 창춘(長春)과 지린(吉林)시 등 지린성 2개 지역과 선양(瀋陽)시 랴오닝(遼寧)성 10개 지역에서는 현재 한국이 수입하는 중ㆍ단립종 쌀을 재배하고 있다. 동북3성의 총 벼 재배면적은 322만ha로 생산규모만도 2,126만톤에 이른다. 저마다 유기농법을 표방하고 일본에서 수입한 최신식 기계로 도정한다. 동북3성의 대표작물인 콩은 연간 1,600만 톤이 생산돼 이중 40만톤이 한국으로 수출된다. 고추, 마늘, 양파, 당근 등 중국산 채소류는 이미 우리 식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한중 FTA의 최대난관은 농업분야에 있다. 한중FTA 산ㆍ관ㆍ학 공동연구 보고서는 한중 FTA가 체결돼 중국 농산물 관세가 없어지면 중국산 농산물 수입액이 연 108억 달러(약 13조원) 증가하고 우리 농업생산 규모는 14.2~14.7%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검역절차마저 간소화할 경우 한국 농업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한중 FTA협상의 초점이 우리 농업 지키기에 모아지는 이유다.
산장평원 (헤이룽장성)·베이징=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 전문가 제언
한국 경제는 이제 중국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농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우리 농업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국은 농업 생산대국임과 동시에 농산물 소비대국이다. 우리 농산물 수출확대에 한중 FTA가 좋은 계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방어에만 치중하면 이길 수 없으므로 방어와 공격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과 같이 농업대국이지만 농업강국은 아니다. 따라서 한중 FTA 협상 과정에서 약자 본능에 의한 농업 보호 전략으로는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 중국 농업은 우리 보다 취약, 농가 호당 경지면적은 0.5㏊로 한국 농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국의 도농간 소득격차는 한국의 몇 배에 이른다. 이러한 중국에 단순히 우리 농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만으로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중국은 농업의 중요성과 농민의 아픔을 잘 아는 나라다. 따라서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 우리나라 농업 피해를 최소화하자면 우리 농업이 처해있는 특수 상황에 대한 중국 측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설득논리 개발이 중요하다.
중국은 한국의 농업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어 한국이 양국 농업의 공동발전을 추구한다는 진정성을 보인다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타 분야에서 응분의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농업을 지켜낸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정정길(사진ㆍ한국농촌경제연구원 중국사무소장)
■ 궈라이빈 중국 베이다황지주회사 사장 인터뷰
“중국 농업대표기업 베이다황(北大黃)이 생산한 유기농 쌀 등 주요 농산물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자신한다. 한국인들은 베이다황 브랜드를 조만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베이다황그룹 지주회사의 궈라이빈(郭來濱ㆍ사진) 경영전략담당 사장은 지난달 24일 “베이다황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한국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한국의 CJ와 합작사업을 통한 다양한 사업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다황은 올해 매출액 기준으로 중국 500대 기업중 45위(지난해 65위)를 차지했다”며 “브랜드 가격만도 205억3,600만위안”이라고 설명했다. 베이다황은 90개 농장과 38개 기업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난해 총 매출액은 726억위안, 영업이익은 16억위안에 달한다.
궈 사장은“베이다황은 대표 곡물인 쌀과 대두를 세계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농장의 대규모화와 기계화, 품질재고에 힘을 쏟고 있다”며 “유기농 쌀은 세계시장에서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본격화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 “중국과 대만 양안간에 체결된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서 대만산 농산물에 대한 중국 관세는 대폭 낮아진 반면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대만의 관세는 그대로 유지돼 중국 농업인들이 불만에 차있다”며 “한중 FTA는 결코 이 같은 불평등조약이 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중FTA 협상에서 농산물 분야를 둘러싸고 첨예한 공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얼빈=장학만특파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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