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시즌이 시작됐다. 2일 아시아 최초의 비엔날레인 제8회 광주비엔날레가 가장 먼저 막을 올리고 66일 간의 대장정에 돌입했으며, 6일 개막하는 제6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 서울’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전시장을 공개했다. 두 비엔날레 모두 사진과 영상을 중심으로 하면서 화려한 모양새와 거대한 스케일보다는 진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 이미지 박물관,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스펙터클한 설치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수많은 사진과 이미지들이 촘촘하게 전시장을 메우고 있다.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를 주제로 택한 이탈리아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총감독은 “이미지 과잉의 시대, 사람들은 이미지에서 위안을 찾고 이미지를 숭배하며 소비하고 파괴한다.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을 통해 이미지와 사람의 관계를 고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앨범과 같은 전시”라는 그의 설명처럼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독일의 큐레이터이자 컬렉터인 이데사 헨델레스의 ‘테디베어 프로젝트’다. 테디베어 인형을 안고 있는 온갖 사람들의 사진 3,000여장이 전시장 바닥부터 천장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마치 도서관의 아카이브실을 연상시킨다. 똑같은 인형을 안고 웃고 있는 이들의 사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우상이나 대용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103개의 실물 크기 조각으로 이뤄진 ‘렌트 컬렉션 코트야드’는 대지주에게 착취당하는 중국 소작농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1970년대 쓰촨미술학교에서 제작된 이 작품은 중국 문화혁명의 토대가 된 이미지다. 방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뚜얼 슬렝 수용소 초상사진’은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처형 직전 사진으로 이뤄져 있다. 존재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남아 당시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독일 작가 구스타프 메츠거의 ‘역사적 사진’은 전시장 바닥에 깔려있는 노란색 천 안으로 기어들어가야 볼 수 있다. 1938년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합병 당시 기어다니며 거리를 닦고 있는 유대인들의 사진으로, 그들의 심리까지 느껴보도록 한 것이다. 스위스 작가 페터 피슐리와 다비드 바이스의 작품 ‘가시적인 세계’는 어두운 방 안에 설치된 28m 길이의 전시대 위에 있다. 관람객들은 그 위에 올려진 3,000장의 사진을 통해 작가들의 20년에 걸친 여행의 흔적들을 목격하게 된다.
전시는 새로운 이미지도 수집한다. 이탈리아 작가 프랑코 바카리는 ‘이 벽에 당신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시오’라는 제목으로 즉석 사진 부스를 설치해놓고, 벽에 사진을 붙이도록 했다. 관람객들이 촬영한 사진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이다.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은 “친근한 주제를 현대적 방식으로 풀어냄으로써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도록 만든다. 비엔날레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안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고 말했고,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다양한 관점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짜임새있게 구성됐다. 역대 광주비엔날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11월 7일까지 계속된다.
■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 미디어시티 서울
“유명환 장관 딸 특혜 논란.” ‘미디어시티 서울’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 들어가는 순간 입구에 서 있던 여성 스태프가 뜬금없는 말을 건넨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관람객. 이것이 올해 미디어시티 서울에서 만나는 첫 작품 티노 세갈(영국)의 ‘이것은 새롭다’이다.
그날 신문의 헤드라인을 통해 관객과 즉흥적 대화를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로비에 놓인 커다란 화분은 네덜란드 작가 빌럼 데 로이의 ‘부케’다.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운 분홍색 꽃들은 사실 생화와 조화의 혼합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그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는 미디어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디어아트 행사라고 해서 화려하고 신기한 테크놀로지의 향연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간의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가 미디어아트의 기술적 특징과 가능성에 집중했다면, 올해 행사는 보다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미디어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펴본다. ‘신뢰’라는 다소 모호한 주제를 내건 김선정 총감독은 “기술이 곧 발전과 희망이라는 미사여구 대신에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미디어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작품 가운데는 종교ㆍ정치적 분쟁 등 세계 곳곳의 갈등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논픽션 작업이 자주 눈에 띈다. 이스라엘 방위군이 적을 암살할 때 사용하는 특수 렌즈로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찍은 미키 크라츠만(아르헨티나)의 사진 시리즈 ‘표적 살인’,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왈리드 라드(레바논)의 영상작업 ‘인질:바카르의 기록’, 국제형사재판소의 재판기록을 연극처럼 재현한 주디 라둘(캐나다)의 ‘법정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프리미티브’ 역시 태국의 폭압적 현실을 다루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 전시된 이 작품은 영상과 책, 사진으로 구성돼있다.
실파 굽타(인도)의 ‘노래하는 구름’은 천장에 구름처럼 매달린 수천개의 마이크를 통해 역사의 충돌과 인간의 욕망을 노래하고, 김범의 ‘무제’는 9시 뉴스를 편집해 전혀 새로운 내용의 뉴스를 만들어냄으로써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조덕현의 ‘허스토리 뮤지엄’ 프로젝트는 여성 100명과의 인터뷰를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에 풀어놓은 사운드아트다.
영상 작업이 대부분이라 한 눈에 전시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눈과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작품이 많다. 주최 측은 오디오 가이드와 가이드북을 무료로 제공, 이해를 돕는다. 미디어시트 서울은 11월 17일까지 이어진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