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4,700억원. 지난 이틀 간 허공에 증발한 신한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이다. 지난 2일 신한은행이 신상훈 지주 사장을 배임과 횡령으로 검찰에 고소하자, 외국인투자자들은 이 회사 주식을 팔아 치우기 시작했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날아간 것이 돈만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이번 사태로 신한은 돈으로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몇 년이 걸려도 다시 회복하기 힘든 소중한 것을 잃었다. 바로 신뢰와 명성이다.
신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믿을 만한 은행이었다. 경쟁은행인 KB금융지주의 어윤대 회장마저 “신한이 부럽다”고 말했을 정도. 몇 년 전엔 미국 하버드대학의 MBA과정에서 신한의 성공스토리(정확하게는 조흥은행과 성공적 합병)를 강의교재로 채택하기까지 했다.
모두가 부러워했던 신한의 힘, 그 원천은 바로 안정적인 리더십이었다. 탁월한 영업력, 빈틈없는 부실관리, 놀라운 응집력 등 타 은행을 압도한 신한의 강점은 결국 라응찬 회장을 정점으로 한 흔들림 없는 경영권에서 나온다고 모두들 믿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더 충격적이다. 신 사장의 횡령ㆍ배임건에 대해선 현재 양측이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만큼 사실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결국 ‘차기 대권’을 둘러싼 수뇌부의 갈등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가장 단단하다고 여겨졌던 신한의 경영지도부내에서 치열한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있었고, 더구나 이를 내부에서 처리하지 못한 채 검찰고소라는 파국으로까지 끌고 갔으니, 지금까지 알려졌던 ‘신한의 경영신화’는 어쩌면 허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은행 외형은 발로 뛰면 늘릴 수 있다. 부실채권도 노력하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당사자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신한의 CEO들은 1년여에 걸친 회장공백에 ‘식물’행장 사태, 즉 전형적인 CEO리스크로 인해 순식간에 ‘리딩 뱅크’지위를 상실했던 KB(국민은행)의 사례를 결코 남의 일로 봐선 안될 것이다.
손재언 경제부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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