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54ㆍ사진) 시인이 아홉 번째 시집 (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냈다. 1986년 등단한 이래 줄곧 자기반성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시에 담아온 그가 (2006) 이후 4년 만에 내는 시집이다. 2000년대 들어 도시적 일상에서 자연으로 시적 무대를 옮겨온 그는 이번 시집에서 가히 ‘자연과 인간의 비차별적 소통’(평론가 이숭원)이라 부를 만한 진경을 펼쳐 보인다.
‘햇살 꽂힌다/ 잠든 척 엎드린 강아지 머리에/ 퍼붓는 화살/ 깼나 안 깼나/ 쿡쿡 찔러본다/…/ 바람 분다/ 이제 다 영글었다고/ 앞다퉈 꼭지에 매달린 것들/ 익었나 안 익었나/ 쿡쿡 찔러본다’(‘찔러본다’에서)
‘우리 밭에 놀러 오라고 나하고 살자고/ 꼬드겨도 묵묵부답’인 듬직한 이웃 밭 소나무를 유혹하려 ‘우리 밭 끄트머리/ 참한 자태의 아낙 소나무 한 그루/ 심었다’(‘미인계’에서)는 시인의 천진함이라니. 그 남다른 감각 덕분에 그는 잡초의 질긴 생명력 앞에서 생뚱맞게도 고독함을 느낀다. ‘몇 걸음 가다 돌아보면/ 뽑은 자리 헤치고 또 꿈틀 일어서 있다// 이 막막한 밭고랑 나만 혼자다// 나만 혼자다 중얼대며/ 아무도 없는 들판 오줌 누고 있는데/ 앞뒤좌우위아래, 일제히 깔깔대며 손짓하는 풀들// 이 광활한 우주 나만 혼자다’(‘고독’에서)
풀을 보고 소외감을 느끼는 무구함으로 그는 세상사의 그늘을 응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와 선입견에 물들지 않은 그 시선은 투명하고도 날카롭다. ‘대형마트에 얻어터진 난전의 눈두덩이 시퍼렇다/ 온 데 파스를 바르고 나온 친절 연습/ 사시사철 땡볕 세례에 그을린 할머니들/ 애교 떨며 보조개 만들며 요염한 브이 자를 그린다/ 눈물겹다 자본주의 꽁무니라도 따라붙으려는/ 저 늦은 보충학습’(‘재래시장 살리기’에서)
빚에 시달리다 자살한 뒤 오래 방치됐던 한 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그는 이렇게 그린다. ‘그는 건들건들 세월아 네월아 껄렁한 폼으로 옷걸이에 걸려 있었다/ 경매에 넘어간 그를 누군가가 구매했고/ 쓰레기봉투에 쑤셔 넣기 전/ 쓸데없는 물건으로 분류된 뼈다귀 몇 개를/ 발로 한번 툭 걷어찼다’(‘풍장’에서). 부패한 시신조차도 상품과 쓰레기로 나누는 비정한 사회에 대한 섬뜩한 묘사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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