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지음
창비 발행ㆍ133쪽ㆍ7,000원
1998년 등단한 이영광(45ㆍ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두 번째 시집 (2007)에서 보여준 삶과 죽음에 대한 빛나는 사유를 정치사회적 상상력과 포갠다. 생사관이 관념에서 현실적 차원으로 확장된 셈이다. 3부로 구성된 시집의 제1부에 주로 배치된 이들 시는 강도높은 사회 비판을 담고 있는데, 용산참사 등에 대해 적극 발언해온 시인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억압과 부조리의 사회에서 살아있으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로 전락한 인간을 이씨는 ‘유령’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소름끼치는 그림자,/ 그림자처럼 홀쭉한 몸/ 유령은 도처에 있다/…/ 희망을 아예 태워버리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며 당신이/ 인사불성으로 삼차를 지나온 순간,/…/ 당신에겐 유령의 유전자가/ 찍힌다, 누구나 죽기 전에 유령이 되어/ 어느 주름진 희망의 손에도 붙잡히지 않고/ 질척이는 골목과 달려드는 바퀴들을 피해/ 힘없이 날아갈 수 있다’(‘유령 1’에서)
이 유령들, 표제시에선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인 ‘의 퀭한 원주민’으로 불린 이들의 처지를 시인은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사는 건 결코 어렵지 않아요/ 살려고 마음먹는 것보다는/ 살아보려고 마음먹을 때까지 생이/ 받아주지도 버려주지도 않는 것보다는’(‘포장마차’에서) 그는 영세민의 웅크린 등에서도 먹먹한 서정을 긷는다. ‘입간판 들여놓고/ 셔터 내리고/ 울음을 내놓으려 하는 얼굴을,/ 자꾸 품속을 파고드는 앞을// 부릉 부릉 부릉/ 헬멧에 점퍼로 단단히 여민/ 등이 안고 간다’(‘등’에서)
때론 직정적으로 표출되는 비판의식을 미학적으로 고양하는 것은 시인 특유의 통찰력과 감수성이다. 시집의 2, 3부에 실린 시들은 빼어난 서정시인으로서 이씨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특히 사랑과 이별에 관한 시편들이 그렇다. 지난 시집에서도 ‘당신은 좆도 몰라요’라는 육두문자의 결구로 애틋한 연애시를 빚어내는 마술을 선보였던 그였다.
‘울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불이 들어가서 태우는 몸./ 네 사랑이 너를 탈출하지 못하는 첨단의 눈시울이/ 돌연 젖는다 나는 벽처럼 어두워져/ 아, 불은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한다./ 따로 앉은 사랑 앞에서 죄인을 면할 길이 있으랴만,/ 얼굴을 감싸쥔 몸은 기실 순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성채/ 울어야 할 때 울고 타야 할 때 타는 떳떳한 파산/ 나는 불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없다.’(‘사랑의 미안’에서)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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