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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갑지 않은 비

입력
2010.09.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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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는 유독 비가 자주 내렸다. 서울에는 8월 한달 동안 24일이나 비가 왔다. 1908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8월 강우일수로는 가장 많다. 더욱이 올 여름 강수량은 최근 30년 평균에 비해 전국적으로 1.4배, 서울은 1.7배에 이른다. 요즈음 언론 등에서 '2차 장마' 또는 '가을 장마'라는 다소 생소한 말을 자주 대하게 된다. 장마가 끝난 뒤 8월에 쏟아지는 비를 일컫는다. 올해 2차 장마가 유난히 두드러진 것은 기후변화에 따라 한반도 주변 바닷물 온도가 높아지고,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수증기가 대량 유입됐기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다.

왜 북태평양 고기압이 남하하지 못하고 한반도 주변에 오랫동안 정체돼 있을까. 기상학자들은 한반도 정반대편 칠레 서쪽 연안의 해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라니냐(La Nina) 때문에 남하하지 못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한반도에 강하게 머물고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은 제 7호 태풍 곤파스가 서해 강화도로 상륙한 주된 원인이기도 했다.

문제는 라니냐 현상이 기후변화에 의하여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올 여름 세계 각지에서 이상 기상과 환경재해를 초래하고 있다. 8월 파키스탄 북서부에서는 1929년 이래 가장 심한 홍수로 1,100명의 사망자와 약 1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또한 러시아 중서부를 휩쓸고 있는 대규모 산불은 기후변화에 따른 기온상승과 건조한 날씨가 맞물리는 바람에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한 심각한 대기오염은 이미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 주재 일부 국가 대사관은 잠정 폐쇄된 상태다.

지난해 겨울 제15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 15)회의에서 채택한 코펜하겐 합의는 지구평균 기온의 증가를 2∼3℃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농도를 350∼450ppm 이내로 묶어두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가 일정수준으로 유지되더라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202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 전망치 대비 30%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과 국민의 자발적 노력이 절실하다. 기업은 녹색 신산업 창출 등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힘을 쏟아야 하고, 국민은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녹색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저탄소 사회로의 길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후변화는 생물종의 대량멸종과 수자원 부족뿐만 아니라 식량자원 부족, 과수 재배지역의 변화 등 농업 시스템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는 이미 지난 겨울 혹독한 한파와 많은 눈을 경험했고, 이번 여름에는 폭염도 겪었다. 그 동안 예측 가능했던 기후 패턴에서 벗어나 언제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기상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태세를 갖춰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을 초입에 비가 내리면 더위가 한풀 꺾이고 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올해는 9월에도 국지성 호우가 빈번하고 더위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더 이상 비가 반갑지 않은 것도 지구온난화 환경에서 새로운 기후변화 현상에 적응해야만 하는 현실 때문이다.

이석조 국립환경과학원 기후대기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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