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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 파괴적 소비 비판하던 젊은이, 돈 없이 1년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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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돈 한푼 안 쓰고 1년 살기' 파괴적 소비 비판하던 젊은이, 돈 없이 1년 살아보니…

입력
2010.09.0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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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보일 지음ㆍ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발행ㆍ328쪽ㆍ1만3,000원

영국 브리스톨에 사는 아일랜드 청년 마크 보일(31)은 2008년 11월 29일부터 1년 간 돈 없이 사는 실험을 시작했다. 적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아예 한 푼도 받지도 쓰지도 않고 살기로 했다. 계획을 공표하자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다. 온갖 질문과 비판이 쏟아졌다. 왜 그렇게 살려고 하느냐, 돈 없이 어떻게 사느냐, 필요한 물건들을 어떻게 구할 거냐, 민폐만 끼치는 공짜 인생을 살겠다는 소리냐, 진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지켜보자 등등.

그가 이처럼 무모한 실험을 감행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6년간 유기농업체에서 일했던 그는 지구 환경과 생태적 삶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였다. 무분별한 과소비가 파괴와 착취, 불평등의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돈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가치들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경쟁을 부추기고 좌절을 조장하고 삶을 압박하는 돈 없이도 잘 굴러가는 세상을 꿈꾸면서.

결과는 성공이었다. 남들의 예상과 달리 그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돈 없이 1년을 보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는 그 1년의 기록이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 그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여섯 달 동안 준비를 했다. 어떠한 돈도 받지 않고 지출하지도 않는다. 생활은 평소대로 한다, 친구도 만나고 오락도 즐기면서. 조건 없이 베푼다, 준 것만큼 받을 거라는 기대나 계산 없이. 내 고집을 강요하지 않고 남을 존중한다. 화석 연료를 쓰지 않는다, 환경을 파괴하므로.

은행 계좌부터 없앴다. 소비생활 목록을 꼼꼼히 작성한 다음 각 항목을 돈 없이 어떻게 해결할지 궁리했다. 필요한 것을 얻는 법, 직접 만드는 법을 조사하고 배웠다. 쉽지는 않았다. 전원은 태양열 전지로 해결했다. 충전하려면 오래 기다려야 했다. 물은 강물을 썼다. 음식은 들판에서 구한 버섯과 열매 등 야생식물과 슈퍼마켓 등이 버리는 멀쩡한 식품, 유기농 농장에서 일하고 받은 채소로 해결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남들에게 나눠주는 모임에서 공짜로 얻은 이동주택에서 살았다.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했다. 부지런해야 했다. 퇴비용 간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야생 회향 열매와 오징어뼈를 갈아 만든 치약을 썼다.

필요한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몸으로 해결해야 하는 생활은 사서 하는 고생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이른 새벽 들판과 눈 내리는 밤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야영의 즐거움, 누군가의 노동으로 생산된 물건들의 소중함, 나누고 베푸는 삶의 기쁨 등이 그가 얻은 수확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사람에 대한 믿음을 배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불안해하지만, 그는 돈보다 더 안전한 게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고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가 돈을 버리고도 잘 산 비결은 서투른 계산에 있다. 누군가에게 조건없이 베풀면 언젠가 또다른 누군가가 내가 필요한 것을 준다는. 그는 이것을 자연을 움직이는 ‘마법의 댄스’라고 부르면서, 사람 사는 세상도 이 마법의 댄스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실험을 끝낸 지금도 그는 돈 없이 살고 있다. 돈을 버리고 오직 상호 존중과 배려, 호의로 돌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면서. 돈 없이 살기 운동을 하는 프리코노미(www.freeconomy.org)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현재 회원이 1만 7,000명이라고 한다. 이 책의 인세는 프리코노미 공동체의 땅을 마련하는 기금으로 쓸 계획이다.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고, 구성원들이 아무 조건 없이 서로 도우며, 지구를 아끼고 돌보는 마을이다. 백일몽처럼 보이지만, 그는 자신이 믿고 꿈꾸는 이상을 향해 착실하게 발을 내딛고 있다.

돈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돈 없이 살았다. 그렇게 사는 기술을 잊어버렸을 뿐이다”라고. 그는 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하지만, 당장 돈을 없애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돈이 교환수단으로 편리하다는 것, 돈 없이 살아보기가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돈이 조금 덜 중요한 세상, 돈보다는 공동체적 가치와 자연을 배려하는 마음이 귀중하게 통하는 세상이다.

제목만 보고 오해를 했는지, 국내 대표적 온라인서점 예스24는 이 책을 ‘재테크 분야’로 분류했다. 자린고비 매뉴얼로 알았나 보다. 하기는 돈 없는 세상에서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돈보다 더 소중한 무형의 가치를 증식하고 실천하는 법이 참된 재테크이겠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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